항목 ID | GC0880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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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豊川 任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동오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문광균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미상 - 임향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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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 시기/일시 | 14세기 말 - 임향 입향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미상 - 임향 사망 |
본관 | 풍천 - 황해도 송화군 풍해면 |
입향지 | 풍천 임씨 입향지 -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 동오리 |
세거|집성지 | 풍천 임씨 집성지 -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미산면|웅천읍 |
묘소|세장지 | 임향 묘소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
성씨 시조 | 임온(任溫) |
입향 시조 | 임향(任向) |
[정의]
임향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개설]
풍천 임씨(豊川 任氏)는 시조인 임온(任溫)[?~?]을 시조로 하고, 임향(任向)[?~?]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연원]
풍천 임씨(豊川 任氏)의 시조인 임온(任溫)은 본래 중국 소흥부 자계현 사람으로 벼슬은 고려 때 은자광록대부에 이르렀다고 한다. 임온은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1259~1297]를 수행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풍천(豊川)[현재 황해도 송화군 풍해면]에 왕이 본거지를 마련해 준 것으로 전하는데, 이때부터 후손들은 풍천을 본관으로 삼아 계통을 이어 왔다.
시조 임온의 6세손 임주(任澍)[?~?]는 고려 충렬왕 대 경상도안찰사를 거쳐 감문위대장군을 역임하였다. 풍천 임씨는 임주의 아들 대에 와서 백파(伯派)[파조 임자송(任子松)]와 중파(仲派)[파조 임자순(任子順)]로 크게 나뉘며, 두 파에서 고루 인물을 배출시켜 가문을 중흥시켰다. 그 후 임자순의 아들 임향(任向)이 충청남도 보령으로 입향하였다.
[입향 경위]
임향은 고려 공민왕(恭愍王)[1330~1374] 대 정승 자리에 있던 중 당시 권력자인 신돈(辛旽)[?~1371]의 실정에 맞서서 직간(直諫)·항소하다가 충청남도 홍성에 있는 고구도에 유배된 후 다시 남포 죽도로 이배(移配)[귀양살이하는 곳을 다른 곳으로 옮김]되었다. 이후 유배 기간 중 고려가 망하고 새롭게 조선이 건국되면서 조정으로 돌아올 것을 권유받았지만, 불사이군(不事二君)[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함]의 자세를 고수하면서 정착한 곳이 지금의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동오리이다. 그 후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미산면, 웅천읍에 널리 퍼져 600여 년을 살게 되었다.
[현황]
2015년 통계지리정보서비스 본관 인구 분포 조사에 따르면, 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풍천 임씨는 1,746명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입향조 임향의 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동막동 양각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당시 뛰어난 학자인 임헌회(任憲晦)[1811~1876]의 글을 받아서 신도비를 세웠는데, 신도비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 동막동 묘소 입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