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8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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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保寧聖住寺址石佛立像 |
이칭/별칭 |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정성권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0년 9월 20일 -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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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장처 | 보령 성주사지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
성격 | 불상 |
재질 | 화강암 |
소유자 | 보령시 |
관리자 | 보령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3호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보령 성주사지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개설]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保寧聖住寺址石佛立像)은 보령 성주사지의 강당지(講堂址) 동쪽 측면에 세워져 있는 석불입상이다.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은 중문지(中門址)가 있는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현재의 자리는 본래의 위치는 아니다. 2010년대 전반기까지 무릎 아래가 땅 속에 묻혀 있었으나 근래 석불을 정비하면서 방형의 대석 위에 올려놓았다.
[형태]
얼굴은 타원형인데 마멸이 심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머리 위에는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머리 모양은 머리카락이 없는 소발(素髮)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마 위쪽에 나발(螺髮)[부처의 머리털.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라 하여 이렇게 이른다.]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본래 돌출된 나발 형태의 머리카락 표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귀는 두텁게 조각된 채 어깨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목은 부러졌던 것을 시멘트로 수리해 놓았으나 삼도(三道)[불상 목 주위에 표현된 3개의 주름으로, 생사(生死)를 윤회하는 인과(因果)를 나타내며 혹도(惑道) 또는 번뇌도(煩惱道), 업도(業道), 고도(苦道)를 의미함]의 표현이 선명하다.
가슴에는 사선으로 흘러내리는 내의(內衣) 표현이 있으며,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通肩) 형식의 대의(大衣)를 착용하고 있다. U자형 옷 주름은 가슴부터 무릎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있으나, 복부 부분은 파손이 심하여 정확한 옷 주름의 형태가 파악되지 않는다. 석불의 옷 주름은 전면과 측면까지만 표현되어 있으며 후면은 거칠게 정다듬으로 마감하였다.
석불입상의 후면 마감을 거칠게 다듬어 놓는 사례는 통일 신라 석불보다 고려 시대 석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마감 처리 방법이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뜨리고 있으며, 왼손은 복부에 올려 놓은 형태이나 손 역시 파손되어 있다. 왼팔 아래로는 옷자락이 길게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특징]
무릎 아래가 완전히 노출된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은 전체 높이 약 2.5m 가량의 대형 석불입상이다. 왼쪽 겨드랑이 부근과 팔꿈치 주변의 옷 주름이 리본 모양으로 표현된 점이 주목되는데, 이러한 표현은 주로 고려 초기 조성된 철불(鐵佛)의 옷 주름 등에서 확인되는 옷 주름 묘사 방법이다. 볼륨감보다 수직적인 이미지가 강조되어 있으며, 석불입상의 뒷면을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는 점, 왼쪽 팔에 나타난 옷 주름 등의 특징을 보았을 때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의 조성 시기는 고려 전기로 추정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은 성주사(聖住寺)의 시대별 변천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석불이다. 2000년 9월 2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