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8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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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憲祠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남포방조제로 821-33[관당리 산37-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사현 |
건립 시기/일시 | 1494년 - 문헌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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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725년 - 문헌사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지역에 재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1년 - 문헌사 보령시 향토문화유산 지정 |
이전 시기/일시 | 1992년 - 문헌사 보령시 남포면 관당리로 이전 |
현 소재지 | 문헌사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남포방조제로 821-48[관당리 산37-1] |
원소재지 | 문헌사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리 |
원소재지 | 문헌사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
성격 | 사우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령시 향토유적 제3호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에 있는 조선 전기 윤회, 윤자운의 사우.
[개설]
문헌사(文憲祠)는 조선 초기 병조판서(兵曹判書)와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지낸 윤회(尹淮)[1380~1436]와 윤회의 손자이자 영의정을 지내고 무송부원군(茂松府院君)에 봉해진 윤자운(尹子雲)[1416~1478]을 제향하는 사우(祠宇)이다. 윤회의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청경(淸卿), 호는 청향당(淸香堂)이다. 고려 말 조선 초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윤소종(尹紹宗)[1345~1393]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박경(朴瓊)의 딸이다.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승정원 대언(代言)을 거쳐 예문관 대제학,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윤자운은 윤회의 손자로 자는 지망(之望), 호는 낙한재(樂閑齋)이다. 아버지는 윤경연(尹景淵)이며, 어머니는 이백인(李伯仁)의 딸이다. 1444년(세종 26)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예문관 검열(檢閱)을 시작으로 집현전부수찬(集賢殿副修撰), 이조좌랑(吏曹佐郎) 등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수양대군을 도와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功臣)이 되었고, 1460년(세조 6) 여진족 정벌에 참여하였으며, 이시애(李施愛)[?~1467]의 난 진압에 나서기도 하였다. 성종(成宗)[1457~1494]이 즉위하자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되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위치]
문헌사는 보령시 웅천읍 죽청리에 있는 관당초등학교에서 동북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있다.
[변천]
문헌사는 1494년(성종 25) 윤자운의 묘와 신도비가 있는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리에 처음 건립되었다. 1725년(영조 원년) 웅천읍 소황리 지역에 사는 무송 윤씨(茂松 尹氏) 후손들이 위패를 모셔다가 다시 건립하였다. 이후 1992년 소황리에 군사시설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형태]
문헌사는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박공(朴工) 아래에는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헌사(文憲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 전면 동편에는 건물 1동이 있다. 이 건물은 3면이 막혀 있고 전면만 트인 맞배지붕 양식이다. 건물 정면에는 솟을삼문이 있으며 담장이 둘러져 있다.
[현황]
1991년 12월 10일 보령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