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일대에 있었던 백제 시대 행정 구역. 가림군(加林郡)은 백제가 6~7세기에 설치·운영한 37군(郡)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가림성(加林城)[옛 이름 성흥산성(聖興山城)]이 가림군 중심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 757년(경덕왕 16) 통일 신라의 경덕왕(景德王)이 ‘가림군(嘉林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
충청남도 부여군 의열사와 삼충사에서 제향하고 있는 백제 말기의 충신. 계백(階伯)[?~660]은 조선 후기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이름은 승(升)이고 성씨는 백제 왕실의 성씨와 같았다”라는 기록이 있어 ‘계백’을 성씨로 보기도 한다. 계백의 조상은 개백현(皆伯縣)[현 경기도 고양시]을 근거로 삼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기이(紀異)」 태종춘추공(太宗...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는 바위. 낙화암(落花岩)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다. 660년 7월 백제는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왕도 사비성(泗沘城)이 함락되고 백제가 멸망할 위기에 처하였다. 백제 왕궁에 있던 궁녀들은 적군에 항복하기보다 죽기로 마음먹고 부소산성의 북쪽 강변 바위에서 차례로 떨어져 죽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후대에 궁녀들...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 설치된 백제 시대 행정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지리지3에 따르면 웅주(熊州)에 속한 가림군(嘉林郡)에는 2개의 현(縣)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한산현(翰山縣)은 본래 백제 대산현(大山縣)이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라고 한다. 고려 시대에는 한산현을 홍산현(鴻山縣)으로 불렀다. 대(大)·한(翰)·홍(鴻)은 모두 ‘크다’는 뜻...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귀족. 복신(福信)[?~?]의 성은 귀실(鬼室)이다.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조카이자 백제 제31대 의자왕(義慈王)[재위 641~660]의 사촌동생으로 전한다. 부여 부소산에서 발견된 당유인원기공비(唐劉仁願紀功碑)와 『일본서기(日本書紀)』 권26 제명기(齊明紀) 6년 조에 기록된 ‘귀실복신(鬼室福信)’이라...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 행정 지명. 선사 시대부터 대규모 청동기 마을을 형성한 정치 세력이 자리 잡았고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소국이 있었으며, 4세기 중엽에 백제 영토로 편입된 뒤 538년부터 백제의 새로운 왕도(王都)로 개발되어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백제 시대의 이름은 소부리(所夫里), 사비(泗沘)였으며, 부여군(...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상영(常永)[?~?]은 백제 사비 도읍기인 의자왕 대 중앙 부서에서 활동한 고위 관리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행정 구역. 백제가 멸망한 뒤 통일 신라 시대인 686년(신문왕 6)에 백제의 왕도였던 사비(泗沘)[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일대]에 소부리군(所夫里郡)이 설치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왕변나(王辯那)[?~?]의 성은 왕씨(王氏)로 추정된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왕효린(王孝隣)[?~?]의 성은 왕씨(王氏)이며, 중국계 백제 관료로 추정된다....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웅진도독부 소속 지방 행정 구역. 우이(嵎夷)는 고대 중국에서 해가 뜨는 동쪽 바닷가 이민족의 땅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는데, 당(唐)나라가 백제를 공격할 때 군사 진격로의 이름을 ‘우이도(嵎夷道)’라 하였다. 또한 백제를 멸망시킨 뒤에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와 13개 현(縣)을 설치할 때 백제왕도 사비 지역에 설치한 현을 우이현(嵎夷縣)이라...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장군. 윤충(允忠)[?~?]은 장군의 직책으로 부여에서 활동하였으나 성씨에 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고위 관료이자 장군. 은상(殷相)[?~?]은 649년 백제의 좌장(左將)으로서 신라를 공격하였다가 도살성(道薩城)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료이자 장군. 의직(義直)[?~?]은 백제 사비 도읍기에 중앙군의 장군으로 활동하였으나 성씨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무신.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8 「백제본기」에 따르면, 660년(의자왕 20) 8월에 부여풍이 이끄는 백제부흥운동군은 왜국이 보낸 군사 2만 7000명과 함께 힘을 합친 뒤 백강(白江) 어귀에서 나당 연합군과 네 번 싸웠는데, 왜군의 배 400척이 불타고 많은 병사가 몰살하였으며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로 도망...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일대에 있었던 백제 시대의 행정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권7 신라본기 문무왕 11년(671) 6월 조에는 “마침내 당나라 군사와 석성(石城)에서 싸워 5,300명을 목 베고 백제 장군 2명과 당나라 과의(果毅) 6명을 사로잡았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의 석성을 석산현[진악산현]과 같은 곳으로 보기도 한다.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의 파진산 지맥에는 석...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 행정 구역. 본래 백제 대산현(大山縣)이던 곳을 757년(경덕왕 16)에 한산현(翰山縣)으로 고치고 가림군(嘉林郡) 소속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지리지3 웅주(熊州) 조에 전한다. 고려 초에 한산현을 홍산현(鴻山縣)으로 고쳤는데, 대(大)·한(翰)·홍(鴻)은 모두 ‘크다’는 뜻을 지닌 한자이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장군. 흑치상지(黑齒常之)[630~689]의 어릴 적 이름은 항원(恒元)이다. 선조의 성씨는 부여씨(扶餘氏)였는데, 흑치(黑齒) 지역에 봉해졌으므로 흑치로 바꾸었다. 증조할아버지는 흑치문대(黑齒文大), 할아버지는 흑치덕현(黑齒德顯)이며, 아버지는 흑치사차(黑齒沙次)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의열사와 삼충사에서 제향하고 있는 백제 말기의 충신. 흥수(興首)[?~?]는 백제 의자왕 때 제1품 좌평을 지낸 충신이다. 사비의 중앙 부서에서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흥수는 위기를 맞은 의자왕이 귀양지로 사람을 보내 의견을 구한 만큼, 의자왕 즉위 초 왕권 강화를 위하여 성충(成忠)과 함께 적극 노력한 인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