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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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의열사와 삼충사에서 제향하고 있는 백제 말기의 충신. 계백(階伯)[?~660]은 조선 후기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이름은 승(升)이고 성씨는 백제 왕실의 성씨와 같았다”라는 기록이 있어 ‘계백’을 성씨로 보기도 한다. 계백의 조상은 개백현(皆伯縣)[현 경기도 고양시]을 근거로 삼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기이(紀異)」 태종춘추공(太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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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부여 지역의 역사와 문화. 부여 지역에는 마한의 소국인 고포국(古蒲國)이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원삼국 시대 유적으로는 증산리 유적에서 주구묘 14기가 확인되었으며, 가중리 유적에서 7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쌍북리 두시럭골 유적에서는 덧널무덤과 원형 수혈유구들이 조사되었고, 가탑리 유적에서는 널무덤과 독무덤이 조사되었다. 가탑리 가탑들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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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국지모(國智牟)[?~?]는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국씨 가문이다. 국씨는 국지모 이외에도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에 국변성(國辯成),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국사리(國沙利), 덕솔 국수다(國雖多), 국변성 등이 확인된다. 국변성이 의자왕이 당나라로 갈 때 대좌평 사택천복 등과 함께 끌려갔다는 기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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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당나라에서 제30대 무왕과 제31대 의자왕, 부여융과 부여경에게 내린 명예직 벼슬. 대방군은 후한(後漢) 말 건안(建安) 연간[196~220]에 요동 지역의 패권자인 공손강(公孫康)이 낙랑군(樂浪郡)의 둔유현(屯有縣)을 비롯한 남쪽 7개 현을 따로 떼어내 설치하였던 이른바 외군(外郡)이다. 중심지인 대방현(帶方縣)의 관청이 지금의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에 있는 당토성(唐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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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북포에 있던 포구. 대왕포(大王浦)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북포(北浦)에 있었던 포구로, 백제 무왕이 놀고 잔치하면서 노래 부르고 춤추던 곳이라 하여 ‘대왕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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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한 승려 출신의 장군. 도침(道琛)[?~661 또는 662]의 출신이나 가계는 분명하지 않다. 사망 시기는 661년 또는 662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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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백제의 제30대 왕. 무왕(武王)[?~641]의 성은 부여(扶餘)이며, 이름은 부여장(扶餘璋)이다. 백제 제29대 왕인 법왕(法王)[재위 599~600]의 아들이며, 제30대 의자왕(義慈王)[재위 641~660]의 아버지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금마(金馬)[현 전라북도 익산시]의 연못에 사는 용과 가난한 어머니 사이에서 무왕이 태어났으며, 마를 캐어 생계를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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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음악가이자 무용가. 미마지(味摩之)[?~?]는 중국 오나라에서 기악무(伎樂舞)를 배우고 돌아온 뒤 612년(무왕 13) 일본으로 건너가 기악무를 전수한 백제 무왕 때의 음악가이자 무용가이다. 미마지는 티베트어로 ‘고승(高僧)’ 또는 ‘예능인’를 의미하는데 백제에서 온 예능이 능하였던 승려를 ‘미마지’라고 칭하였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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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과 공주시에서 매년 9~10월에 개최하는 백제 역사 재현형 축제. 백제문화제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백제역사유적지구에서 개최하는 세계적인 역사 문화 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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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538년 사비 천도 이후 660년 멸망할 때까지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도성. 백제는 475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면서 웅진으로 천도하였는데, 점차 국력을 회복함에 따라 무령왕이 “다시 강국이 되었음[更而强國]”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웅진도성은 급하게 천도하면서 너무 협소한 지리적 여건 등 때문에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사비도성은 국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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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제29대 왕. 법왕(法王)[?~600]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선(扶餘宣)이다. 백제 제28대 왕인 혜왕(惠王)[재위 598~599]의 아들이며, 제30대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아버지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수서(隋書)』 등에는 법왕이 위덕왕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백제 왕실 계보에서 혜왕을 누락하면서 생긴 오류라는 게 학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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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귀족. 복신(福信)[?~?]의 성은 귀실(鬼室)이다.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조카이자 백제 제31대 의자왕(義慈王)[재위 641~660]의 사촌동생으로 전한다. 부여 부소산에서 발견된 당유인원기공비(唐劉仁願紀功碑)와 『일본서기(日本書紀)』 권26 제명기(齊明紀) 6년 조에 기록된 ‘귀실복신(鬼室福信)’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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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터에 있는 백제 시대 석탑.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은 백제 사비 도성의 중심 사찰인 정림사터에 건립한 7세기 오층석탑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현존하는 두 기의 백제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목탑 형식으로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조성되는 고려 시대 백제계 석탑의 시원이 된다. 2021년 국보 제9호로 지정되었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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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서동공원 일대에서 매년 7월 개최하는 연꽃 축제. 부여서동연꽃축제(扶餘薯童蓮꽃祝祭)는 부여군이 주최하고 부여문화원이 주관하여 부여 서동공원 일대에서 매년 7월 개최하는 연꽃 축제이다. 부여 서동공원은 백제 무왕 때 인공 축조한 궁남지를 중심으로 조성한 공원이다. ‘서동’이란 명칭은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의 이름에서 따왔다. 서동공원의 중심에 있는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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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왕족. 부여융(扶餘隆)[615~682]의 이름과 자는 모두 ‘융(隆)’이다. 할아버지는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이고, 아버지는 백제 제31대 의자왕(義慈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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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왕족. 7세기 중엽 백제의 왕자로서 의자왕 때 사비에서 왜(倭)로 건너가 활동하였으며, 성은 부여씨(扶餘氏)이고, 이름은 풍(豊) 또는 풍장(豊璋)이다. 백제가 멸망한 뒤 부흥운동군의 요청에 따라 661년경 백제로 돌아와 왕이 되었으며, 663년 백강구전투(白江口戰鬪)에서 백제와 왜 연합군이 신라와 당 연합군에게 전멸당하자 고구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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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부여군 지역의 불교 활동은 백제의 불교 전래로부터 시작된다.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 마라난타가 동진에서 불교를 들여온 이후이다. 이듬해인 385년 왕도에 마라난타를 위하여 불사를 창건한 것을 백제 불교의 시초로 본다. 392년 2월에는 왕명으로 백제의 백성들이 불교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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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장수. 사걸(沙乞)[?~?]은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이자 사비기에 왕비족(王妃族)으로 급부상한 유력한 귀족 가문인 사씨(沙氏) 출신이다. 사씨는 정치적 기반이 사비 지역이었는데, 538년(성왕 16) 사비 천도 과정에서 유력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무왕 재위 초기에 사씨 세력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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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를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 무왕의 왕비. 사택왕후(沙宅王后)[?~?]는 백제 제30대 무왕의 비이다.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사씨 가문으로,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다. 사택왕후의 사택씨(沙宅氏)는 사탁씨(沙矺氏) 또는 사탁씨(沙乇氏)라고도 불리며, 단일성으로 표기할 때는 사씨(沙氏)이다. 『수서(隋書)』「백제전」에서 백제의 유력한 여덟 가문인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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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공원. 서동공원(薯童公園) 중심에는 1964년 6월 10일 사적으로 지정된 부여 궁남지(扶餘 宮南池)가 있다. 부여 궁남지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이며, 일본의 정원에 영향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부여 궁남지는 신라 선화 공주와 결혼한 무왕의 ‘서동요 전설’이 깃든 아름다운 연못이며, 보존 가치가 높아 관광객 유치와 부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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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에 있는 드라마 세트장. 서동요 세트장은 백제 무왕 서동과 선화공주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극화한 한국 최초의 백제 역사 SBS 드라마 「서동요」 오픈세트장이다. 2005년 60억 원을 들여 3만 3000㎡[약 1만 평] 규모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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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일대에서 즐겨 먹던 먹거리와 식문화. 충청남도 부여군은 금강(錦江)이 중앙부를 관통하고, 주변에는 넓은 충적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따라서 예부터 부여 지역 사람들은 금강에서 나는 민물고기 등과 풍부한 농산물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음식들을 만들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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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백제 사비도성에서 건물과 유물에서 구현되었던 신선 세계. 백제 사비도성에는 아침저녁으로 신인(神人)이 서로 왕래하였다는 세 개의 산[삼산]이 있었다. 신인은 신선이면서 산신이기도 하다. 신인 즉 신선이 사는 곳은 인간 세계가 아닌 선경으로 이상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백제인은 신선이 사비도성을 선경으로 변모시키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삼산뿐만 아니라 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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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의 역사 시대에 대한 전반적인 개관. 부여 지역에 언제부터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하였는지는 구체적이지 않다. 부여 지역에서는 외산면과 홍산면의 지표 조사를 통하여 구석기 시대 유물이 수습되었다. 외산면 반교리에서는 몸돌 1점이, 홍산면 좌홍리에서는 양날찍개 1점이 수습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도 마찬가지이다. 은산면과 규암면에 신석기 관련 유적이 수습되었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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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연문진(燕文進)[?~?]은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연씨(燕氏) 가문이다. 연씨는 웅진 천도 이후에 등장한 신진 세력이었으나, 478년(삼근왕 2) 연신이 해구의 반란에 연루되어 중앙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이후 497년(동성왕 19) 연돌이 병관좌평에 임명되면서 유력한 귀족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연씨 세력의 재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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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왕변나(王辯那)[?~?]의 성은 왕씨(王氏)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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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왕효린(王孝隣)[?~?]의 성은 왕씨(王氏)이며, 중국계 백제 관료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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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서 해마다 음력 2월에 전쟁에서 사망한 원혼을 위로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은산별신제는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 주민들이 마을 사당인 은산별신당(恩山別神堂)에 모여 백제 군사의 넋을 위로하고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이다. 제사 날짜는 해마다 음력 2월로 정하며 보통 보름 동안 약 100여 명의 인원이 참가한다. 은산별신제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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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제31대 왕. 의자왕(義慈王)[?~660]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이다.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맏아들이며, 부여융(扶餘隆)[615~682]·부여효(扶餘孝)·부여풍(扶餘豊) 등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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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제31대 왕. 의자왕(義慈王)[?~660]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이다.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맏아들이며, 부여융(扶餘隆)[615~682]·부여효(扶餘孝)·부여풍(扶餘豊) 등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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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위덕왕이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운 원찰. 사적 부여 왕흥사지(扶餘 王興寺址)는 부소산 서북쪽 백마강 건너편 울성산성 남쪽, 일명 왕안마을 일대에 있다. 백제 사비 도읍기의 대표적인 가람 터이다. 1934년 ‘王興(왕흥)’ 글자가 새겨진 고려 시대 기와와 석조불좌상, 토기 등이 발견되어 백제 왕흥사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200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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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위덕왕이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운 원찰. 사적 부여 왕흥사지(扶餘 王興寺址)는 부소산 서북쪽 백마강 건너편 울성산성 남쪽, 일명 왕안마을 일대에 있다. 백제 사비 도읍기의 대표적인 가람 터이다. 1934년 ‘王興(왕흥)’ 글자가 새겨진 고려 시대 기와와 석조불좌상, 토기 등이 발견되어 백제 왕흥사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200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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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수북정 아래에 있는 바위. 자온대(自溫臺)는 백제 무왕이 왕흥사(王興寺)에 예불을 하러 가기 전에 먼저 부처를 바라보고 절을 하였던 곳으로 전해지는 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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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의 조룡대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조룡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의 조룡대(釣龍臺)와 관련한 지명 전설이다.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백제에 쳐들어왔을 때 흰말을 미끼 삼아 백제 왕을 낚아 백제 침공에 성공하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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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까지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성행한 신앙 활동. 부여 지역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종교가 성행하고 있다. 고대부터 근대 이전까지는 불교와 유교가 주류였다면, 현재는 불교와 유교 외에도 천주교와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며 각 종교의 교리를 활발하게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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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의 천등산과 다섯 장수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천등산 다섯 장수」는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의 천등산(天燈山)과 백제 시대 공을 세운 다섯 장수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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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서 포룡정에 관하여 전하는 이야기. 「포룡정 이야기」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궁남지(宮南池) 안에 있는 포룡정(抱龍亭)이라는 정자에 관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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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활동한 사학자. 홍사준(洪思俊)[1905~1980]은 백제사 연구의 기반을 세웠으며 백제 문화 연구 진흥에 크게 기여한 사학자이다. 홍사준은 백제에 관한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여 연구하였으며 특히 고고학, 미술사, 역사학 등 백제 역사와 문화 등의 연구에 큰 성과를 이루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