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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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恩津宋氏 |
영어의미역 | Eunjin S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태성 |
[정의]
송대원을 시조로 하고 송성원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연원]
은진 송씨의 시조는 고려 때 판원사(判院事) 송대원(宋大源)이다. 6세손 송유(宋愉)의 후대에 송계사(宋繼祀)·송계중(宋繼中) 형제가 있는데, 송계중이 사직공파(司直公派), 송계사의 아들 송요년(宋遙年)·송순년(宋順年)이 각각 목사공파(牧使公派)·정랑공파(正郞公派)로 갈렸다. 이 3파는 후대에서 50여 파로 갈라졌다. 은진 송씨는 조선 시대에 좌의정 2명, 대제학 1명과 많은 학자·명신을 배출했는데, 특히 목사공파와 정랑공파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정랑공파의 대표적 인물은 노론의 영수 송시열을 비롯하여 송인수(宋麟壽)·송기수(宋騏壽)·송덕상(宋德相)·송환기(宋煥箕)·송치규(宋穉圭)·송근수(宋近洙) 등이다. 송시열은 우의정·좌의정을 역임했는데 숙종 때 서인(西人)이 노·소론으로 갈리면서 노론의 영수가 되었다.
[입향 경위]
은진 송씨의 창원 입향조는 문충공(文忠公) 규암(圭庵) 송인수의 6세손인 통덕랑(通德郞) 안촌(安村) 송성원(宋成源)이다. 은진 송씨는 충청도 회덕(懷德)에 오랫동안 살았는데, 송성원이 처음 창원으로 이거하였다. 이후 창원 안민동 안촌과 도계동에 집성을 이루고 살았다.
[현황]
창원시 성산구 안민동에는 지금도 아파트 단지 사이에 옛 집들이 몇몇 남아 있고, 그 주변에 은진 송씨들이 다수 살고 있다. 이들은 안촌 송성원의 자손들이다. 그러나 도계동에 살던 후손들은 도시 개발로 인하여 도계동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새롭게 형성된 인근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