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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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政治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병석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이루어지는 정치권력 획득 및 이와 관련된 활동.
[개설]
현대적인 의미에서 한국의 정치는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후 제헌의회가 구성되고 의회에서 제정한 자유 민주주의 헌법에 의한 정부 수립 이후를 의미한다. 천안의 정치 역시 제1 공화국의 등장 이후 중앙 정치와 지방 자치의 결합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변천]
천안은 정부 수립 이후 중앙 정치 무대에서 장기 집권을 유지하려는 독재 정권을 견제하며 또 지역 발전이라는 대명제에 부합하도록 시대 상황에 따라 여·야, 무소속 후보를 조화롭게 당선시킨 지역이었다.
건국 초기에는 좌우 이념 대립으로 정체성의 혼란기였다. 전국적인 양상으로 천안도 이 흐름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승만 정권의 색깔론이 제헌의원의 당락을 결정짓는 오류를 낳기도 했는데, 바로 제헌의원 보궐 선거에 관한 일이었다. 해방 후 역사적인 첫 주민 투표로 치러진 1948년 5월 10일 제헌의원 선거에서 무려 10명이 나선 후보 가운데 대한 독립 촉성 국민 회의 이병국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제헌의회가 개원되고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사망함에 따라 부득이 보궐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1949년 6월 10일에 치러진 보궐 선거에서 12명이 나선 후보 가운데 김용화 후보가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으나 당시 집권 세력이 그의 연설 내용을 문제 삼아 당선을 무효로 하고 재보궐 선거를 치르게 하였다. 1949년 7월 23일의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 국민당의 이상돈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헌의원 보궐 선거에서의 색깔론은 6·25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심이 판명해 주었다. 12명의 후보 가운데 유효 투표수 4만 9986표에서 무려 1만 4245표를 얻어 5,800표를 얻은 2위와 압도적 표차로 김용화 후보가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6·25 전쟁을 치르면서 민심도 자연스레 국가 안보를 염두에 두고 여당 지지 성향을 띠게 되었다. 1954년 5월 20일 치러진 제3대 국회의원선거와 1958년 5월 2일 시행된 제4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여당인 자유당 후보가 모두 당선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한편, 집권 자유당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장기 집권만을 획책하던 자유당의 독재 횡포가 극에 달하자 민심도 자연 등을 돌리게 되었다. 1960년 7월 29일에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민의원] 선거에서 천안 갑구 민주당 홍춘식, 을구 민주당 이상돈 후보가 당선되었다. 1963년 11월 26일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정당의 이상돈 후보가 민주 공화당의 홍춘식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당시는 5·16 군사정변 후 첫 국회의원 선거였다. 이후 국가 재건을 내세운 박정희 정권에 대한 기대감과 군사 정권의 체계적 선거 홍보의 영향으로 제7대 국회의원 선거[1967년 6월 8일]에서 여당인 민주 공화당 김종철 후보가, 제8대 국회의원 선거[1971년 5월 25일]에서 역시 민주 공화당 김종철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1973년 2월 27일]에서는 양상이 달랐다. 천안시, 아산군, 천원군 등 3개 시·군이 하나의 선거구[중선거구]로 선거를 치렀는데, 결과는 여당인 민주 공화당 김종철, 야당인 신민당 황명수, 유정회, 이성근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0대 국회의원 선거[1978년 12월 12일]에서도 민주 공화당 김종철, 신민당 정재원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여·야의 조화가 절묘하게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양상은 신군부가 들어 선 제5 공화국에서의 제11대 국회의원 선거[1981년 3월 25일]와 제12대 국회의원 선거[1985년 2월 12일]에까지 지속되었다. 제11대에서 여당인 민주 정의당 정선호, 무소속 황명수 후보가, 제12대에서는 민주 정의당 정선호, 야당인 민주 한국당 정재원 후보가 당선된 점을 보면 천안의 민심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제5 공화국 말기 자유 민주 열망은 정점에 달아 연일 시위로 이어졌다. 시위는 6·29 선언이 나오고 나서야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는데, 이와 같은 민심은 그대로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당시 ‘녹색 바람’이라고 일컬어지는 충청권 민심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영향을 미쳤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1988년 4월 26일]에서 야당인 신민주 공화당 정일영[천안시 선거구], 신민주 공화당 김종식[천원군 선거구]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1996년 4월 11일]에서는 신민주 공화당의 후신인 자유 민주 연합의 정일영[천안 갑구], 역시 자유 민주 연합의 함석재[천안 을구]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1992년 3월 24일]는 이른바 3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연합으로 여야 구분이 미묘한 시기였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2000년 4월 13일] 이후로는 야당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천안 시세의 팽창과 수도권 인구를 비롯한 유입 인구의 증가로 주민 성향도 변화의 조짐을 보였고 여타 상황으로 인해 여당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2004년 4월 13일에 치러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 전용학[천안 갑구], 자유 민주 연합 함석재[천안 을구]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생 야당인 열린 우리당 양승조[천안 갑구], 역시 열린 우리당 박상돈[천안 을구] 후보가 당선 되었다. 2008년 4월 9일의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야당인 통합 민주당 양승조[천안 갑구], 자유 선진당 박상돈[천안 을구] 후보가 당선 되었으나, 천안 을구 박상돈 의원이 임기 중에 충청남도 도지사 후보로 나서고자 중도 사퇴함에 따라 보궐 선거가 치러져 여당인 한나라당 김호연 후보가 당선되어 의원직을 승계하였다. 2012년 4월 11일 치러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합 민주당 양승조[천안 갑구], 역시 통합 민주당 박완주[천안 서구] 후보가 당선되었다.
[현황]
2012년 현재 천안에서는 새 누리당과 민주 통합당 등 두 주요 정당과 자유 선진당, 통합 진보당, 진보 신당, 사회당 등이 활동하고 있다. 2012년 12월 현재 여당 국회의원은 없고 제1 야당인 통합 민주당 국회의원이 천안을 대표하여 국회에서 활동 중이다. 기초 단체장인 천안 시장은 여당인 새 누리당 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