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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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主敎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환 |
[정의]
조선 후기 목천 성거산과 광덕산 일대에 자리 잡은 천주교 교우촌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천안 시내와 외곽 전체에 널리 자리 잡은 가톨릭교회.
[개설]
충청남도에서 천주교가 처음 전해진 곳은 1784년 이후 삽교천 일대의 내포 지방(內浦地方)이었다. 천안 지역은 이보다 늦은 1800년대 초에 천주교가 전파되었는데 내포 지방과 다른 지역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성거산 일대로 모여들어 교우촌(敎友村)이 형성되면서부터였다. 박해의 영향으로 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교우촌이 발달하다 보니 천안 지역의 외곽인 풍세와 광덕 지역으로 천주교가 확산되었다.
[천주교 박해 이후의 변천]
천주교 신자들이 자리를 잡아 살아가기 시작한 성거산 일대의 대표적인 교우촌은 소학골[북면 납안리], 서들골[목천읍 송전리], 장자동[목천읍 신계리], 복구정[북면 연춘리], 베장골[북면 양곡리] 등이다. 풍세 지역에는 원당리[풍세면 삼대리], 골말[풍세면 보성리], 풍세[풍세면 풍서리] 등의 교우촌이 있었다. 광덕 지역에는 저우실[광덕면 무학리], 넓티[광덕면 보산원리], 쇳골[광덕면 매당리], 넛직막이와 부원골[광덕면 광덕리] 등을 꼽을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서도 신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천안 외곽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도심지에 성당을 건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라 1939년 천안 성황동에 ‘천안 성당’[현재의 오룡동 성당]을 설립하여 천안 지역의 중심 성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 성환[1960], 신부동[1977], 봉명동[1985], 원성동[1986], 입장[1988], 성정동[1993], 쌍용동[1995], 신방동[1998], 두정동[2003], 직산[2003], 쌍용 3동[2004], 불당동[2005], 쌍용 2동[2006], 신방 2동[2008] 성당이 차례로 설립되어 천안 지역에 널리 자리를 잡아 지역사회와 함께하고 있다.
[천주교 기관과 시설들]
천주교는 여러 가지 기관과 시설을 가지고 있는데 지역 사회 안에서 가장 밀접하게 접촉하는 기관은 성당들이다. 2012년 현재 천안 지역에는 시내와 외곽에 16개의 성당이 있다. 천안 동부 지구에 오룡동, 목천, 성환, 입장, 직산, 신방 2동, 신부동, 원성동 성당이 있고, 천안 서부 지구에 쌍용동, 쌍용 2동, 쌍용 3동, 두정동, 봉명동, 불당동, 성정동, 신방동 성당이 있다.
이밖에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천안 관구] 수녀원이 천안시 동남구 성황동에 있으며,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에서 복자 여자 중고등학교[천안시 동남구 성황동 9번지]를 운영하고 있다. 천안시 동남구 원성동에 자리 잡은 ‘천안 성모의 집’은 무료 급식을 통해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늘어나는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천안 모이세’가 천안시 동남구 오룡동에 사무실을 두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2012년 현재, 천주교 신자 수는 천안시 인구의 10%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평가와 의의]
천안 지역 천주교의 역사는 조선 후기 박해의 영향 때문에 도시 외곽의 산간 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점차 도시 종교로 발전하는 과정을 축소판처럼 보여주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역사는 짧으나 천안의 발전과 더불어 천주교 안에서의 중요성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