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729 |
---|---|
한자 | 忠憲祠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은지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제연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32년 - 충헌사 개축 |
---|---|
현 소재지 | 충헌사 -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은지리 |
성격 | 사우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1칸 반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은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우.
[개설]
박문수(朴文秀)[1691~1756]는 조선 후기 암행어사로 유명한 인물이며, 영조 대에 벌어진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분무공신 2등에 책록되면서 공신 영정을 하사받았다. 충헌사(忠憲祠)는 그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재실이다.
[위치]
충헌사는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은지리에 있다. 북면사무소에서 57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서 삼거리에서 진천 병천 방향으로 가면 은지리 입구가 있다. 이곳에서 은석골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고령 박씨 종중 재실 내 우측에 충헌사가 자리한다.
[변천]
박문수는 분무공신에 책록되면서 천안의 은석산 일대의 토지를 사패지로 받았고, 사후에 은석산 정상에 묘를 조성하게 되었다. 묘 아래에는 박문수를 제향하기 위한 사우가 건립되었는데, 이곳에 공신 도상을 모시고 충헌사라 불렀다. 이것은 박문수의 시호인 충헌에서 따 온 것이다.
충헌사를 창건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박문수가 사망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1932년에 대대적으로 개축하면서 규모가 커지고 건물 배치도 달라졌다고 한다.
[형태]
충헌사는 제향을 드리는 사우이지만 민가 주택처럼 지어졌다. 전면 4칸, 측면 1칸 반에 가운데 두 칸은 툇마루가 있고 팔작지붕을 올렸으며 공포는 일반 민가에서 흔히 사용되는 민도리 양식이다.
[현황]
1932년 개축하면서 옛 모습은 달라졌으나 1987년 고령 박씨 종중 재실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면서 충헌사도 지속적으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2004년 충헌사에 도둑이 들었지만 다행히 주요 문화재를 도난당하지는 않았다. 충헌사에 모시고 있던 박문수 영정은 박문수 어사 유물관을 두었다가 현재 천안 박물관에 기증된 상태이다. 은지리 은석골의 충헌사 주변의 도로명은 ‘박문수 길’이라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