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7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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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南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경수 |
[정의]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언양(彦陽). 고려 시대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김취려(金就礪)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증 좌승지(贈左承旨) 김응상(金應祥), 할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정립(金挺立)이다. 아버지는 사산 감역관(四山監役官) 김절(金晢)이며, 어머니는 도정(都正)을 지낸 유덕신(柳德新)의 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부인은 감사(監司)를 지낸 홍득일(洪得一)의 딸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슬하에 3남을 두었는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치봉(金致鳳)·영희전 참봉(永禧殿參奉) 김치구(金致龜)·문과 급제한 김치룡(金致龍)이다.
[활동 사항]
김남갑(金南甲)[1624~1684]은 직산 출신으로, 자라면서 과거에 뜻을 두었으나 수차례 낙방하였다. 1665년(현종 6) 음직으로 효릉 참봉(孝陵參奉)에 제수된 후, 1667년에 평시서 봉사(平市署奉事)를 거쳐 1670년에 내섬시 직장(內贍寺直長)을 역임하였으나 동료의 잘못으로 인해 함께 파직되었다. 그러나 1671년에 복직되어 의령고 직장(義寧庫直長)·사옹원 주부(司饔院主簿)·장례원 사평(掌隷院司評)을 지냈고, 1675년(숙종 2)에 문경 현감(聞慶縣監)을 지냈다. 1678년(숙종 5) 6월 신병으로 직무 수행이 어려워져서 벼슬에서 물러났다.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여 집안 친척들로부터 아낌을 받았으며, 평생 남의 허물을 입 밖에 내어 말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