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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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範稷 |
이칭/별칭 | 보경(輔卿),조암(釣菴),조은(釣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내수 |
출생 시기/일시 | 1868년 - 이범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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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6년 1월 - 이범직 제천 의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896년 2월 16일 - 이범직 유인석 의진 소모장에 임명되어 천안 군수 김병직 처단 |
몰년 시기/일시 | 1896년 9월 1일 - 이범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이범직 건국 훈장 독립장 추서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유인석 의진 소모장 |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이범직(李範稷)[1868~1896]은 1895년 을미사변 후 안승우(安承禹)·이춘영(李春永)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남과 호서 지방에서 활약하다가 유인석(柳麟錫) 의진의 소모장(召募將)이 되어 천안 군수 김병숙(金炳肅)을 처단하였으며, 1896년 4월 제천 전투에서 패배 후 일본군에게 잡혀 순절할 때까지 유인석 의진에서 활동하였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보경(輔卿), 호는 조암(釣菴)·조은(釣隱)이다. 충청북도 충주 출신으로 광평대군(廣平 大君) 이여(李與)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1894년(고종 31) 일본군의 경복궁 침범 사건이 일어나자 강원도 관찰사 민형식(閔亨植)을 찾아가 거의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거절당하자 귀가하였다. 다음 해에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다시 동문인 안승우(安承宇)를 찾아가 함께 거의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중 1896년 1월 동문 이춘영(李春永)이 지평(砥平)에서 거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안승우와 함께 그곳으로 가서 의병을 규합한 다음 제천으로 진격하여, 그곳 군수 김익진(金益珍)을 몰아내면서 의병 항전을 개시하였다.
이들은 제천에서 이필희(李弼熙)를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전열을 가다듬은 뒤, 1896년 1월 28일 단양으로 진격해 공주 병참 소속 관군과 일본군 연합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 승리하였으나 결국 구심력 부족으로 일본군의 연이은 공격에 와해되었다.
이들은 다시 영월에서 회합하고 유인석(柳麟錫)을 의병대장에 추대하여 호좌 의병진(胡坐義兵陣)을 편성한 뒤 본격적인 항전에 돌입하였다. 1896년 2월 16일 의진의 소모장(召暮將)에 임명된 이범직은 유인석의 명을 받아 부대를 이끌고 호서 지방으로 파견되었고, 천안으로 이동하여 당시 삭발을 심하게 강요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있던 천안 군수 김병숙(金炳肅)을 처단하는 등 큰 활약을 하였다. 또한 의병 해산의 임무를 띠고 중앙에서 파견된 선유사(宣諭使) 신기선(申箕善)을 일시 감금하는 등 그 성세가 두드러졌으나, 돌아오는 길에 구완희(具完喜)가 거느린 청주 관군의 매복 기습을 받아 패배하였다. 그리하여 잔여 의병을 거느리고 충주 가정진(柯亭津)으로 돌아와 전열을 재정비한 뒤 본진에 합류하였다.
이어서 유인석의 본진이 서간도 망명의 장도에 오르자 신지수(申芝秀)와 함께 그 전도(前導)가 되어 먼저 출발하였다. 그러나 황해도와 평안도 각지에서 관찰사·군수들이 의진에 핍박을 가해 와 북상을 계속한 끝에 강계에 당도하였으나, 여기서도 관군의 공격을 받게 되어 부득이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의 수장(守藏) 왕무림(王茂林) 역시 의병들의 망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심한 핍박을 가해 왔다. 정세가 이처럼 불안하자 뒤이어 북상하던 유인석의 의병 본진을 안전하게 안내하기 위하여 이범직은 참모장 권기수(權夔洙) 등과 함께 의병 일부를 거느리고 초산 경계로 마중을 나갔다. 그러나 곳곳마다 군사를 매복시키고 의병의 동정을 정탐하던 강계 관찰사 조승현(趙承顯)과 경무관(警務官) 김동근(金東根)에게 일행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 조승현이 회유하기 위하여 갖은 술책을 다하였지만 끝내 의리를 지켜 권기수 등 부하 20여 명과 함께 1896년 9월 1일 죽음을 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범직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