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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077
한자 金晉熙
이칭/별칭 겸숙(兼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항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788년 - 김진희 판중추부사 증직
성격 무인
성별
대표 경력 의병장

[정의]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무인이자 의병.

[개설]

김진희(金晉熙)는 천안 출신으로, 이인좌의 난 때 공을 세웠다.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겸숙(兼叔)이다. 아버지는 공조 참판을 지낸 김이환(金李桓)이며, 우의정을 지낸 갑봉(甲峯) 김우항(金宇杭)의 조카이다.

[활동 사항]

김진희는 어려서부터 기운이 장사였고 담력이 있어 고을 사람들이 장수의 재목이라고 했다. 청주 상당성 아래에 우거하던 중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위병사 신천영(申天永)이 상당성을 점령하였다. 그러자 김진희는 친척과 동리 장정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70여 명의 장정이 의병에 가담하였다고 한다. 늙은 어머니가 아들을 걱정해 전투에 나가는 것을 말렸으나 김진희는 곧 돌아올 것을 약속하며 의병을 이끌고 상당성으로 진격하였다.

격렬한 전투가 계속되다가 김진희의 부대가 승세를 잡게 되자 친구 박민웅(朴敏雄)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였다. 김진희는 “어머니와 약속한 시간이 되어 전투의 끝을 보지 못하고 가니, 전투가 끝난 후에 지금까지의 전공을 모두 자네의 공으로 조정에 보고해 주게.”라고 하며 떠났다. 이 사실을 안 사람들이 김진희는 충과 효를 모두 아우른 사람이라고 칭송하였다고 한다.

박민웅도 의리를 지켜 김진희의 공을 사실대로 보고하였으며,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은 『김 장군전』을 지어 김진희의 행적을 후세에 전했다.

[상훈과 추모]

1788년(정조 12)에 정문이 내려졌고, 충헌(忠憲)이라는 시호와 함께 판중추부사가 증직되었다. 현재 목천 고등학교 정문 앞 도로변에 김진희의 공적비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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