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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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宜寧南氏 |
분야 |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래업 |
본관 | 의령 남씨 본관 - 경상남도 의령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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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의령 남씨 입향지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
세거|집성지 | 의령 남씨 집성지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
성씨 시조 | 남민 |
입향 시조 | 남도후 |
[정의]
남민(南敏)을 시조로 하고, 남도후(南圖厚)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연원]
남씨(南氏)의 시조는 남민(南敏)이다. 본명은 김충(金忠)이며 중국 당나라 사람인데, 일본에 다녀오는 길에 표류하다가 신라에 도착하여 귀화하였다. 신라 왕이 남쪽에서 온 사람이라 하여 남씨(南氏)를 성으로 하사했다고 한다. 남민의 7세손인 남진용(南鎭勇)의 세 아들 중 맏아들 남홍보(南洪甫)는 영양(英陽), 둘째 남군보(南君甫)는 의령(宜寧), 막내 남광보(南匡甫)는 고성(固城)을 본관으로 하고 중시조(中始祖)가 되었다. 그중 남군보를 중시조로 하는 의령 남씨(宜寧南氏)가 자손이 가장 번성하여 남씨의 중심 성씨가 되었다.
[입향 경위]
1700년대 중엽 경기도 화성에 살던 남도후(南圖厚)가 피난을 와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에 입향하였고, 손자인 남두채(南斗采)가 화양읍 토평리에 정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54가구 173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집성촌인 화양읍 토평리에는 과거 30가구가 훨씬 넘는 의령 남씨들이 살았지만, 2012년 현재 10가구 미만이 남아 있다.
[관련 유적]
화양읍 토평리에 재실인 필경재(必敬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