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희 옹은 몇 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매일 게이트볼을 치러 다니신다. 게이트볼 회원들과의 친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운동은 거르지 않고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생각은 젊은 시절 고된 농사일로 많은 병을 앓으면서 터득한 생활의 지혜와도 같다고. 규칙적이지 못했던 농사일로 위장병에 걸려 많은 고생을 했다는 할아버지는 위장병을 앓았던 기간에 고된...
웃갓마을에서 마을의 전설을 비롯한 옛이야기와 문중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줄 만한 분이 계신가 하고 여쭈어 보았을 때 대부분 마을 사람이 추천해 주신 분이 강재희 옹이었다. 그러나 며칠째 마을회관이며 할아버지 댁이며 그 어디에서도 뵐 수가 없었던지라 ‘키 큰 할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은 날로 늘어만 갔다. 결국 할머니와 대신 약속시간을 정하고 조사 마지막 날 뵙게 된 할아버...
돛대바위로도 불리는 신동 입석은 웃갓마을 아래쪽인 지천면 창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지석묘(支石墓)로 1972년 12월 29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다. 돛대바위는 예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웃갓마을의 액운을 막아주는 신앙의 대상물로 여겨졌는데, 웃갓마을이 배의 모양을 띄고 있다고 해서 돛대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돛대바위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선...
진주강씨(晋州姜氏) 시조 강이식(姜以式)은 597년인 고구려 영양왕 때 도원수로, 수나라 문제(文帝)가 이끈 30만 수군을 정병 5만으로 대파한 명장이다. 강이식은 수 년 후 수나라 문제(文帝)의 아들 양제(煬帝)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할 때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과 함께 살수대첩에서 승리하였다. 이후 강이식은 신라 태중대부판내이령강진이진양후에 봉해지며 본관을...
김광순의 『한국구비문학』에 따르면, 웃갓마을에는 오인석강씨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웃갓마을 주민 강재희 옹에게서 오인석강씨라 불리게 된 연유를 들었다. “왜 오인석이냐면 이 마을에 방구(바위)가 5개 있는데, 방구(바위)를 따가지고 이곳에 사니깐 오인석이라고 지은 거야. 오인석강씨 유래가 요 마을에서 난 거다. 시방(지금) 사는 강씨는 진주강씨라.” 그러니까 강재희 옹의...
진주강씨 박사공파 후손인 강재희 옹은 웃갓마을에서 키 큰 할아버지로 통한다. 지금도 손자들에게 족보며 문중 공부를 가르치신다는 할아버지는 하루 4~5시간 게이트볼을 치시고도 다리에 힘이 없어 다리 힘을 길러야 한다며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를 구입해 타고 다니신다. 강재희 옹은 3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의 3형제 중 큰아들은 아들이 없는 큰아버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