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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465
한자 張錫龍
영어음역 Jang Seokyong
이칭/별칭 장석규(張錫逵),진백(震伯),유헌(遊軒),운전(雲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헌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칠곡군
성별
생년 1823년연표보기
몰년 1908년연표보기
본관 인동
대표관직 숭정대부(崇政大夫)|형조판서

[정의]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공신.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석규(錫逵), 자는 진백(震伯), 호는 유헌(遊軒), 사호(賜號)는 운전(雲田).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장여헌(張旅軒)의 8대손이며 장학추(張學樞)의 아들이나 장유행(張儒行)에게 양자로 들어가 대를 이었다. 어머니는 김해허씨, 부인은 진양강씨이다.

[활동사항]

장석룡은 1846년(헌종 12)에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전적·현풍현감·응교 등을 거처 1862년(철종 13)에 통정대부 병조참의가 되고, 공조·형조참의와 도정·대사헌·대사성·이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울산에서 포악한 정치에 반대하여 백성들의 소요가 발생했을 때 부사로 발탁되어 잘 수습하고 위로하였으며, 큰 흉년에 이재민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는 등 극진히 보살핌으로서 백성들이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 1878년(고종 15)에 가선대부로 승진하여 특진관과 병·형조참판·한성좌우윤·동돈녕부지사·대사헌·부총관·이조참판 등을 거처 1890년(고종 27)에 형조판서와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902년(광무 6)에 숭정대부에 올랐다.

[묘소]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월명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순종 때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시호는 문헌(文憲)이고, 북삼읍 오평리 대나무밭 속에 신도비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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