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4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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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錫龍 |
영어음역 | Jang Seokyong |
이칭/별칭 | 장석규(張錫逵),진백(震伯),유헌(遊軒),운전(雲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헌규 |
[정의]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공신.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석규(錫逵), 자는 진백(震伯), 호는 유헌(遊軒), 사호(賜號)는 운전(雲田).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장여헌(張旅軒)의 8대손이며 장학추(張學樞)의 아들이나 장유행(張儒行)에게 양자로 들어가 대를 이었다. 어머니는 김해허씨, 부인은 진양강씨이다.
[활동사항]
장석룡은 1846년(헌종 12)에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전적·현풍현감·응교 등을 거처 1862년(철종 13)에 통정대부 병조참의가 되고, 공조·형조참의와 도정·대사헌·대사성·이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울산에서 포악한 정치에 반대하여 백성들의 소요가 발생했을 때 부사로 발탁되어 잘 수습하고 위로하였으며, 큰 흉년에 이재민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는 등 극진히 보살핌으로서 백성들이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 1878년(고종 15)에 가선대부로 승진하여 특진관과 병·형조참판·한성좌우윤·동돈녕부지사·대사헌·부총관·이조참판 등을 거처 1890년(고종 27)에 형조판서와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902년(광무 6)에 숭정대부에 올랐다.
[묘소]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월명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