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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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順孫 |
영어음역 | Jang Suns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헌규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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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
성별 | 남 |
생년 | 1457년 |
몰년 | 1534년 |
본관 | 인동 |
대표관직 | 영의정 |
[정의]
조선 전기 및 중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장정필(張貞弼)을 도시조(都始祖)로 하고 대제학 장계(張桂)를 중시조 1세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는 인동장씨로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와는 맥을 달리하고 있다. 조선 중종 때 문숙공 장순손이 영의정을 지낸 연유로 문숙공파의 파조가 되었으며,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장중지(張重智)이다.
[활동사항]
칠곡군 석적읍 출신으로 1485년(성종 16)에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정언·회령판관·부응교를 지내고, 1499년(연산군 5)에 사인(舍人)으로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이듬해 홍문관부제학에 오르고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일시 유배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중종 반정(中宗 反正)으로 풀려나 순찰사가 되었다.
1518년(중종 13) 병조판서를 할 때 과거제도에 현량과(천거제)를 설치하려는 조광조의 주장을 반대하였다가 김안로(金安老)의 일파로 사림(士林)들을 축출하려 했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이후 복직하여 1530년(중종 25)에 이조판서가 되고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1533년(중종 28)에 영의정에 올랐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숙(文肅)이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