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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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蔡楙 |
영어음역 | Chae Mu |
이칭/별칭 | 자후(子後),백포(栢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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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행정리 |
성별 | 남 |
생년 | 1588년 |
몰년 | 1670년 |
본관 | 인천 |
대표관직 | 병조좌랑(兵曹佐郞) |
[정의]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자후(子後), 호는 백포(栢浦). 인천채씨는 고려 말에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되자 절개를 지켜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은거한 채귀하(蔡貴河)를 중조(中祖)로 하고 본관을 인천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는 칠곡의 입향조 거경(巨敬) 채영우(蔡瀛佑)의 후손으로 투암(投巖) 채몽연(蔡夢硯)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어릴 때 낙재(樂齋) 서사원에게 수학했다. 한강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1612년(광해군 4)에 진사에 입격, 1633년(인조 11)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을 지냈다. 일찍이 연원찰방이 되어 선정을 베풀어 고을 백성들이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 그 후 관직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작은 초옥(草屋)을 기산의 소암(嘯巖) 곁에 지어 손에서 성현(聖賢)의 서적을 놓지 않았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백포집(栢浦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이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1712년 11월 2일에 아버지와 함께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의 소암서원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