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572 |
---|---|
한자 | 李相奭 |
영어음역 | Yi Sangseok |
이칭/별칭 | 제여(濟汝),농암(聾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헌규 |
성격 | 유생 |
---|---|
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
성별 | 남 |
생년 | 1835년 |
몰년 | 1921년 |
본관 | 광주 |
[정의]
조선 말기 칠곡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제여(濟汝), 호는 농암(聾巖)이다. 이당(李唐)의 차자 이집(李集)을 일대(一代)로 하고 좌통례공 이극견의 차자 승사랑 이지(李摯)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광주이씨의 후손이다. 귀암 이원정(李元禎)의 주손(冑孫)이며, 아버지는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都正) 이조연(李肇淵)의 장자이다. 어머니는 인동장씨, 부인은 성산이씨·의성김씨이다.
[활동사항]
학문과 도덕이 당시 유림(儒林)의 존중을 받았고, 조선 말기 국정이 어지러워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후진 교육에 힘썼으며, 한일합방 후 문을 닫은 채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호적령이 공포되자 입적을 거부하고 농암정사(聾巖精舍)에 별거하였으며, 마을 입구에는 귀바위가 있는데, 듣고 싶은 것이 없다하여 호를 농암(聾巖)이라 하였다. 귀바위에 농암정사를 짓고 정사에서 후학들의 교육에 힘쓰다가 향년 87세에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농암집』3권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자고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