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6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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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集 |
영어음역 | Yi Jip |
이칭/별칭 | 원령(元齡),성노(成老),둔촌(遁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광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장영복 |
[정의]
고려 후기의 충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초명은 원령(元齡), 자는 성노(成老), 호는 둔촌(遁村). 이집(李集)은 고려 때 판전교시사(判典校侍事)로 광주이씨 시조이다. 충목왕(忠穆王) 때 문과에 급제, 벼슬이 판봉상사(判奉常事)에 이르렀다. 1368년(공민왕 17)에 신돈(辛旽)의 비행을 논박하다가 화를 피해 영천(永川)에 사간(司諫) 최원도(崔元道)의 집에서 피신, 신돈이 처형된 후 복관되었다. 그 후 자손이 대대로 영화를 누리고 문호가 크게 번성했으므로 후손들이 이집을 중흥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하고 있다. 본관은 조상의 세거지 회안(淮安)이 고려 성종(成宗) 때 광주(廣州)로 개칭되었으므로 광주이씨라 하였다.
[활동사항]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판전교시사(判典敎侍事)를 지냈다. 학문과 지조가 있었다. 포은(圃隱)·목은(牧隱)·도은(陶隱) 등 삼은(三隱)과 더불어 도덕과 의리로 사귀었다. 공민왕 때 신돈의 화를 피하여 영천에 피화하였고 신돈이 주살되자 귀향하여 이름을 집(集)으로 고치고 여주 철령현[현 경기도 광주]에 은거하면서 독서로 여생을 보냈다. 후손들이 칠곡의 지천면 신리 상지와 왜관읍의 매원, 석전리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저술 및 작품]
유고 4편이 전해지고 있으며 서신 친필이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묘소]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국가 장래를 위하여 충간(忠諫)한 사실이 높이 평가되어 1807년(순조 7)에 『충의열록』에 충신으로 수록되었다. 이집의 묘역 일대가 경기도 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었으며, 경기도 광주에 귀암서원을 세워 높은 덕을 추모하여 제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