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358 |
---|---|
한자 | 克齋祠堂 |
영어의미역 | Geukjae Shrine |
이칭/별칭 | 세덕사(世德祠)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태훈 |
성격 | 사당 |
---|---|
양식 | 목조가구식|소로수장 |
건립시기/연도 | 현대/2004년[중건]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신유로 62-3[복성1리 1137][양지말]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에 있는 극재(克齋) 신익황(申益愰)의 사당.
[개설]
본관이 평산(平山)인 극재 신익황[1672~1722]은 조선 중기 학자로 자는 명중(明仲)이다. 21세에 향시에 합격한 뒤에는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학덕으로 참봉, 주부 등에 천거되었으나 번번이 사퇴하였다. 만년에는 성리학에 뜻을 두고 이기설(理氣說)을 연구하였다. 학문은 이현일(李玄逸)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전에는 이황(李滉)의 설보다는 이이(李珥)의 설에 기울어져 있었으나 이현일과의 학문적 교류를 통하여 확연히 이이를 버리고 이황의 이기분개(理氣分開) 입장에서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찬성하였다. 죽은 뒤 1765년(영조 41)에 사헌부대사헌에 추증되었고, 1784년(정조 8)에 위패가 곤산서원(崑山書院)에 봉안되었다. 곤산서원은 1871년 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97년 추원당 중건을 시작으로 2004년 사당인 경덕사와 영모재를 중건하였다. 경도사에는 극재공과 함께 증조부인 진정공도 함께 모셔져 있고, 영모재에는 진정공의 후손들이 모셔져 있다.
[건립경위]
극재사당은 정확히 언제 건립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2004년 복성리에 중건되었다.
[위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 1리 양지마을 두만천변에 위치하며 사당 옆으로 2004년에 이건·복원된 곤산서원이 있다.
[형태]
신익황 신도비 일곽을 이루는 외문을 들어서면 극재공의 신도비가 위치하고 그 뒤 일각문을 들어서면 3칸 사당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내부는 통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살은 중앙 어칸이 넓고 양 툇간이 좁다. 측면이 실제 1칸이지만 일반적 사당의 형식을 따르려다 보니 샛기둥을 첨가해 얼핏 전퇴가 있는 형식으로 오해하기 쉽다. 전면에만 쌍여닫이 굽널띠살문을 각 칸에 설치했다.
구조는 외벌대 화강석으로 된 장대석 기단을 만들고 원형 및 방형의 전병 주초를 앉혔다. 전면에만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는 방주를 세워 3량가의 상부구조를 받고 있다. 전면의 주상부는 주두와 보아지로 결구하고 주간의 창방과 장혀 사이에는 소로를 끼워 넣은 소로수장으로 처리했다.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처리했으며 박공면에는 황동제 풍판을 달았다.
[현황]
사당 전면에는 극재공의 신도비가 위치하고 앞으로 배롱나무가 있다. 사당 동쪽 옆으로는 곤산서원이 위치하는데 서원은 외문인 보인문(輔仁門), 강당인 추원당(追遠堂)으로 구성하는 일곽을 두고, 뒤로 별도의 일곽을 이루는 사당인 경도사(景道祠)를 두었다. 경도사는 삼문과 영모재 그리고 경도사로 구성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극재사당은 근래에 건립된 것으로 건축사적으로 볼 때는 가치가 희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