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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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 은거했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경진(景進). 호는 후추(後瘳). 김관(金灌)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김급(金汲)이다. 1591년(선조 24) 생원시에 급제하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영남에서 의병 1,000여 명으로 거병하여 왜군에게 큰 타격을 주는 전공을 세워 참봉이 되었다. 1593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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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금곡리 아래쇠실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후추공(後瘳公) 김신국의 신도비. 조선 선조대와 인조대에 활동한 영중추부사 김신국의 신도비이다. 이 비는 1994년 11월에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국한문 혼용으로 음기되어 있다. 김신국의 유언에 의해 신도비를 세우지 못하다가 1994년 방손 김상수(金象壽)가 찬(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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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여만(汝萬), 호는 동강(東江).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신흠(申欽)이고 어머니는 절도사를 지낸 이제신(李濟臣)의 딸 전의이씨이다. 1605년(선조 38) 태어난 신익전(申翊全)은 1628년(인조 6) 종묘제례에서 예악을 연주하는 재랑(齋郎)으로 천거되고, 이후 예문관검열,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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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남궁외사(南宮外史)·택구거사(澤癯居士). 고조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이행(李荇)이고, 아버지는 좌찬성을 지낸 이안성(李安性)이다. 1609년(광해군 1) 생원이 되고, 다음 해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설서(設書)를 거쳐, 1616년(광해군 8) 폐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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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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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 평택(平澤).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역임한 임유명(林有名), 할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역임한 임덕윤(林德胤), 아버지는 영중추부사를 역임한 임황(林篁),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다. 1594년(선조 27)년 충주에서 태어난 임경업(林慶業)은 1618년(광해군 10) 동생 임사업(林嗣業)과 함께 무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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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열녀. 본관은 전주(全州). 남편은 임경업(林慶業)이다. 임경업의 처 전주이씨는 임경업이 명나라와의 내통 사실이 발각되어 청나라로 압송 중에 탈출한 사건에 연좌되어 가족과 함께 청나라의 수도 심양으로 끌려갔다. 청나라에서 고초가 날로 심해지던 중인 1644년 9월 “나의 남편은 대명(大明)의 충신이고 나는 오로지 충신의 아내임을 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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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계영(繼榮).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임황(林篁)이고, 형으로는 병마절도사 충민공(忠愍公) 임경업(林慶業)과 임승업(林承業)이 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형인 임승업이 맹산 수령으로서 출전한 뒤 형 대신 노모를 봉양하다가 이듬해 모친상을 당하여 밤낮으로 슬프게 통곡하였다. 이때 청나라 군사가 마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