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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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雲海 |
영어음역 | Choe Unhae |
이칭/별칭 | 호보(浩甫),양장(襄莊)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현정 |
[정의]
고려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가계]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호보(浩甫). 호군(護軍) 최녹원(崔祿元)의 아들이다. 세종조에 파저강(婆猪江)의 야인을 정벌한 공으로 세조 묘정에 배향된 최윤덕(崔潤德)이 아들이며, 그 외에도 세 아들을 두었다.
[활동사항]
아버지의 전공으로 공민왕 때 충용위산원(忠勇衛散員)에 기용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전공총랑(典工摠郞)이 되었다. 1385년(우왕 11) 충주병마사가 되어 왜구를 무찔렀으며 순흥·영주 등 처조전병마사 겸 경상도병선도관영사(順興榮州等處助戰兵馬使兼慶尙道兵船都管領事)가 되어 다시 여러 번 왜구를 격퇴한 공로로 순흥부사가 되었다.
또한 왜구가 원주·충주·단양·제천 등지에 자주 출몰하자 조전도병마사(助戰都兵馬使)가 되어 이를 물리치고 충주목사가 되었으며 전주목사를 거쳐 밀직부사에 이르러 충근좌명공신(忠勤佐命功臣)의 호를 받았다. 이어 양광도·광주등처절제사 겸 판광주목사(楊廣道廣州等處節制使兼判廣州牧事)로 왜구를 물리쳐 전공을 세웠다. 1388년에는 전라도부원수(副元帥)로 요동정벌 때 좌군도통사 조민수(曺敏修)의 막하로 출정하였다가 회군 뒤에 도순문사로 정지(鄭地) 등과 함께 왜구를 격파하였다.
1392년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개국원종공신이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문하평리로 양광도절제사가 되어 박위(朴葳) 등과 함께 왜구를 격파하였다. 1396년에는 지중추원사로 경상도병마도절제사가 되어 영해(寧海)[지금의 영덕군]에서 왜구를 격퇴하고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에 항복했던 왜구들이 지울주사(知蔚州事) 이은(李殷) 등을 납치해 간 사건이 밝혀지면서 청해도수군(靑海道水軍)에 충군되었으며 뒤에 풀려나와 1399년(정종 1)에는 전라도조전절제사로 왜구를 방어하였다.
다음 해 참판삼군부사(參判三軍府事)로 예문관학사 송제대(宋齊岱)와 함께 난징[南京]에 다녀오던 중 서원군(瑞原郡)에서 군수 박희무(朴希茂)를 구타한 사건으로 한동안 음죽(陰竹)[현 이천군]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이후 1402년(태종 2)에는 이성도절제사(泥城道節制使)로 태조를 시위하였으며 강계안무사와 서북면순문사를 거쳐 참판승추부사를 지낸 후 사직하였다.
[상훈과 추모]
고려 우왕 때 왜구를 물리친 공로로 충근좌명공신(忠勤佐命功臣)의 호를 받았다.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개국원종공신에 올랐다. 시호는 양장(襄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