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8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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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原儒 |
영어음역 | Choe Wonyu |
이칭/별칭 | 중현,충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최춘자 |
[정의]
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중현. 자제 중 첫째 아들 최염은 검교정승·판밀직부사를 지냈고, 셋째 아들 최순은 성절사로 중국에 다녀온 뒤 직제학·대사간을 역임했다.
[활동사항]
1374년(공민왕 23) 사헌부지평으로 있을 때 최영(崔瑩)을 비난하다 연안부사로 좌천되었다. 1390년(공양왕 2) 우상시를 거쳐 정몽주(鄭夢周)와 유림의 추천으로 보문각직제학에 올랐다. 1392년(공양왕 4)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부하 조영규(趙英珪) 등에게 격살되었다는 비보를 듣고 극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목행동 산14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헌이다. 영천의 수령으로 있을 때 있을 때 정몽주가 최원유의 선정을 칭송하는 시를 지어 관아 현판에 기재했다고 한다. 『고려사(高麗史)』에서는 최원유의 학문과 절개를 높이 평가하여 일명 원유(元儒)라고 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