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8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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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踐 |
영어음역 | Gwon Ch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일성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洞). 증조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권고(權皐)이며, 조부는 검교정승(檢校政丞) 권희(權僖)이다. 아버지는 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 권근(權近)이다.
[활동사항]
1406년 권천과 허웅 등이 대간으로 있을 때 박저생(朴抵生)의 옥송(獄訟)을 체류시킨 죄로 허웅 등은 외방으로 귀양 갔으나 권천은 공신의 아들이라 귀양을 면하였다. 1411년(태종 11) 다시 사헌부장령에 임명되었고 1417년 성균관사예가 되었다. 1419년(세종 1) 상호군으로 태평관에 머물던 두목(頭目)[중국 사신의 일행 가운데 무역을 목적으로 따라온 북경의 상인]을 대접하였다.
1421년(세종 3) 도총제 이담(李湛), 첨총제 심보(沈寶) 등과 함께 임군례(任君禮) 사건(구종수와 대호군 임군례, 소윤 신이(辛頤)가 결당하고 세도에 붙어 마음대로 행동한 사건)에 관련되어 의금부에 하옥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1425년(세종 7)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가 되었다. 1429년 기한 내에 가묘(家廟)를 세우지 않아 탄핵을 당하여 외방으로 축출되었으나 동생 권도(權蹈)가 상소하여 다음 해에 석방되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 산13번지 광명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