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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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達川里萬歲運動 |
영어의미역 | Cheers Movement in Dalcheon-ri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문영주 |
[정의]
1919년 3월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운동.
[역사적 배경]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폭압적 무단통치에 저항하여,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탑골 공원에서는 군중들이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 대열을 이루었으며, 시위의 맹렬한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번져 나갔다. 당시 충주 일원에서도 거족적인 민족 독립 운동 소식을 접하고 종교계와 학교의 지도적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3·1운동을 계획하였다.
[발단]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영향으로 충주 지방에서도 민족독립운동을 도모하는 운동이 모색되었다. 그리하여 1919년 3월 11일 당시 충주면 달천리에서 천도교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하였다.
[결과]
달천리 만세운동은 일본 헌병에게 저지당하고 홍종호(洪鐘浩)·김광배(金光培) 등이 체포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으로 3월 12일 충주읍내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사 유흥식(유자명)을 비롯한 오언영·장천식·유석보 등 학생이 3월 15일 충주장날을 기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하다가 발각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달천리 만세운동은 일제의 가혹한 지배에 저항한 충주 지역 천도교인들의 민족독립운동이라는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