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106 |
---|---|
한자 | 忠州林忠愍公忠烈祠 |
영어음역 | Chungnyeolsa |
영어의미역 | Chungnyeolsa Shrine |
이칭/별칭 | 충렬사,임경업 사당,임충민공 충렬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385-1[충열1길 6]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한정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9년 11월 24일 -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사적 제189호 지정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사적 재지정 |
성격 | 사당 |
양식 | 팔작기와지붕 콘크리트 |
건립시기/일시 | 조선 중기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385-1[충열1길 6] |
소유자 | 충렬사 |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임경업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
[개설]
충렬사는 조선 시대에 국난 극복에 공을 세우거나 절의(節義)를 지켜 순절한 호국의 인물들을 기리고 그들을 제향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위치]
국도 3호선을 타고 충주 방향으로 가다가 달천강 다리를 건너면 철도길을 피하기 위한 고가도가 나오며 여기에 사거리가 있다. 우회전하여 직진하면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가 나온다. 그 앞쪽으로 직진하면 충주 단호사가 있고 단호사 건너편 안쪽에 「임경업 장군 영정」을 모신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가 나온다.
[변천]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는 충민공(忠愍公)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다. 임경업 장군은 충주 풍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훗날 1646년 억울하게 피살된 뒤 고향에 묘소가 세워졌는데, 임경업을 기리기 위해 1697년(숙종 23) 처음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가 건립되었다. 1726년(영조 2)에 임경업의 유상을 모셨으며, 1727년(영조 3)에는 충렬사란 사액 현판이 내려졌다.
1791년(정조 15)에는 ‘어제달천충렬사비(御製達川忠烈祠碑)’가 세워졌다. 1870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유지된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는 본래 목조 기와지붕을 한 3칸의 맞배지붕 형태였으며, 강당은 목조 팔작기와지붕에 10칸이 단청되어 있었으나 너무 퇴락하자 1978년 완전 해체하고 새롭게 단장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형태]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는 콘크리트 기둥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형태로 앞면에 전퇴를 두었고, 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으며, 정면에 걸린 충렬사 현판의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다. 내삼문인 진무문(振武門)은 콘크리트 기둥에 기와 맞배지붕을 한 솟을삼문이다.
외삼문인 갈성문(竭誠門) 역시 콘크리트 기둥에 기와로 맞배지붕을 이었으며, 외삼문과 내삼문 사이의 공간 왼쪽에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목조 기둥에 팔작기와지붕을 한 강당이 있고, 오른쪽에는 ‘어제 달천 충렬사비’ 및 완산이씨 정부인 정렬비와 비각, 그리고 이은상이 쓴 달천 충렬사비가 있다.
[현황]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의 외삼문 밖에는 오른쪽에 유물 전시관이 있고, 왼쪽에는 1978년 10월 세운 임충민공유적 정화 기념비가 있다. 유물 전시관에는 현재 임경업 장군 유상과 교지, 유필, 추련도, 임충민공 충렬사 사액 현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사는 봄과 가을 두 차례씩 행하고 있는데, 평소 참배객들은 사당 바로 앞에서 향을 올리고 방명록에 서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969년 11월 24일 사적 제18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는 조선시대 충의로서 국가를 위해 모든 힘을 아끼지 않았던 임경업 장군의 뜻을 기리고 배우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충렬의 고장이라 할 충주시의 대표적 충신의 유적지로서 앞으로도 충주시를 대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서 그의 숭고한 애국 충절의 정신을 생생하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