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에 있는 1960년 2·28 학생의거를 기리며 세운 기념비. 2·28 학생의거 기념탑(二·二八學生義擧記念塔)은 1960년에 일어난 2·28 학생의거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2·28 학생의거는 1960년 2월 28일 경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경대사대부고], 경북여자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
대구광역시 달서구 갈산동에 있는 유허비. 갈미 유허비는 1996년에 세워진 유허비이다. 유허비는 사라진 마을과 선인들의 자취를 기리고자 세운 비를 말하는데, 마을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곳은 유래비로 이름이 붙여졌고, 갈미처럼 마을이 완전히 사라진 곳은 유적비 또는 유허비로 이름이 붙여졌다....
-
대구 지역에서 노동 교육과 민주노조 지원 활동을 한 노동교육 단체. 대구노동교육협회는 대구 지역 노동자들의 의식화, 조직화를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펼친 노동교육 단체였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 두류공원에 있는 대구사범학교 학생의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대구사범학생 독립운동 기념탑(大邱師範學生獨立運動記念塔)는 대구사범학교 학생의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1998년 3월 1일 세운 기념비이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본리동에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 보호 단체. 대구외국인노동자상담소(大邱外國人勞動者相談所)는 1990년대 초 외국인노동자 산업연수생제도가 실시된 후 대구와 구미 등 대구·경상북도 지역에서 일을 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늘면서 외국인노동자들의 법적 지위와 인권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기 시작하자 제반 문제의 지원과 해결을 위하여 1996년 2월 16일 설립되었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갈산동에 있는 마을 유적비. 망정부락 유적비는 1992년 6월 세워진 마을 유래비로서, 마을 지명의 유래, 마을의 역사, 주민 성씨, 삶의 이력, 마을의 인물과 업적, 비를 세운 이유 등이 새겨져 있다. 현재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장동에 속하였던 자연부락인 망정은 원래 대구부 화원현(花園縣) 감물천면(甘勿川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거치면서 망정동...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기념비. 민족정기 탑(民族正氣塔)은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하여 1995년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세운 기념비이다....
-
1987년 대통령직선제와 독재 타도를 기치로 대구 지역 사회운동 세력과 종교계, 학생운동 조직 등이 광범위하게 연합하여 결성한 시민운동 조직.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 사망 사건 후 민주화운동 세력은 전두환 정권의 부도덕성을 폭로하는 한편, 직선제 개헌 운동을 전개하였다. 정권 유지에 위기를 느낀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는 사회 각계각층의 저항을 불러왔다. 대구·경상...
-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배실마을 유래비는 1999년 9월에 세워진 유래비이다. 유래비는 사라진 마을과 선인들의 자취를 기리고자 세운 비를 말하는데, 마을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곳은 유래비로 이름이 붙여졌고, 마을이 완전히 사라진 곳은 유적비 또는 유허비로 이름이 붙여졌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사령봉 유래비는 1997년 5월 18월 세워진 마을 유래비로서, 마을 지명의 유래가 새겨져 있다. 유래비는 사라진 마을과 선인들의 자취를 기리고자 세운 비를 말한다. 마을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곳은 유래비로 이름이 붙여졌고, 마을이 완전히 사라진 곳은 유적비 또는 유허비로 이름이 붙여졌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선원마을 유래비는 1995년 3월 12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 목련공원 내에 세워져 있는 마을 유래비이다. 이곡동의 자연부락인 선원마을은 달서구 신당동의 동쪽에 있던 마을이며 지금의 달서구립성서도서관 일대에 해당한다. 김해허씨(金海許氏) 허재가 마을을 개척한 후 집성촌을 이루었고, 선원마을 출신인 상무헌(尙武軒) 허득량(許得良)의...
-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대구 성서공단 영세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노동 권익 보호를 위한 노동조합. 성서공단노동조합(城西工團勞動組合)은 2002년 성서공단 내 굿맨손공사 등 소규모 사업장 해고자들과 ‘민중행동’ 활동가들이 함께 창립한 단체이다. 성서공단노동조합은 영세 기업 각자의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성서공단의 특성을 고려하여 만든 지역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신당동 유래비는 1994년 11월 세워진 마을 유래비로서, 마을 지명의 유래, 마을의 역사, 주민 성씨, 삶의 이력, 마을의 인물과 업적, 비를 세운 이유 등이 새겨져 있다. 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속하는 신당동은 김녕김씨가 처음 세거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고 예부터 와룡산의 정기를 받는 곳이라 하여 명당으로 알려져 왔다. 1988년...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에 있는 마을 유적비. 월암부락 유적비는 1994년 11월 세워진 마을 유적비이다. 월암동 마을의 역사, 주민 성씨, 지명, 비를 세운 이유 등이 새겨져 있다. 유적비는 사라진 마을과 선인들의 자취를 기리고자 세운 비를 말하는데, 마을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곳은 유래비로 이름이 붙여졌고, 월암부락처럼 마을이 완전히 사라진 곳은 유적비 또는 유허비로...
-
1996년 대구에서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을 위해 결성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지역조직.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된 진보적 노동조합운동의 흐름은 1995년 11월 11일 당시 총 862개 노조 42만여 명의 조합원을 지닌 전국 노동조합의 연합조직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출범시켰다. 곧이어 지역조직이 구성되어 나갔다. 대구는 대구지역노동조합연합[1989~1996년] 활동 평가...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청소년 교육과 학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육 문화 단체. 청소년교육문화센터 우리세상은 1996년 7월 20일 대구광역시 최초의 청소년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 사무실을 마련하면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6년 제67회 학생의 날 기념 행사를 진행하였으며,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대구 지역 중·고등학교...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학생 항일 투쟁 단체 태극단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太極團學生獨立運動記念塔)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벌인 태극단을 기념하기 위하여 1973년 2월 1일 세운 기념비이다. 원래 구대구상업학교본관에 있던 것을 1985년 달서구 상인동으로 이전하였다. 2003년 10월 19일 다시 태극단학생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이전하였...
-
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파산동 유래비는 2011년 11월 10일 세워진 유래비이다. 파산동의 옛 이름은 ‘머무동’ 또는 ‘머무강창’이다. 머무동은 금호강으로 올라오던 소금 배가 머무는 동네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파산동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지은 동명인데, 파산동과 파호동 사이의 돌무덤에 많은 뱀이 살았다고 한다. 파산동은 원래 대구부 서하면(西河面) 소...
-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파호동 유래비는 2009년 2월 9일 세워진 마을 유래비이다. 파호동은 파산(巴山)의 ‘파(巴)’ 자와 인근을 흐르는 금호강(琴湖江)의 ‘호(湖)’ 자를 따서 ‘파호동’이 되었다. 대구부 서하면(西河面) 소속이던 파호동은 1910년 대구부 성서면(城西面) 파호동에서 1914년 달성군 성서면으로 개편되었다. 1958년 대구시로 들어왔다가...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파리독립청원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 비(韓國儒林獨立運動巴里長書碑)는 일제강점기 파리독립청원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하여 1997년 10월 10일 건립하였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월곡역사공원에 있다....
-
대구광역시 달서구 호림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호림동 유래비는 2004년에 대구광역시 달서구 호림동에 세워진 유래비이다. 호림동은 마을 가운데에 숲이 홀로 우거져 있어 ‘홀림[-林]’으로 불리다가 마을이 풍수지리적으로 여우가 먹이를 찾는 형이니 ‘여우 호(狐)’, ‘수풀 림(林)’을 써서 ‘호림동’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호림동은 원래 대구부 서하면(西河面) 소속이었다.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