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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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仁寬 |
영어공식명칭 | Baek Ingwan |
이칭/별칭 | 사달(士達),선정(禪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도성탁 |
출생 시기/일시 | 134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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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58년 - 백인관 승보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368년 - 백인관 문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421년![]() |
거주|이주지 | 개성 - 북한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
거주|이주지 | 수원 - 경기도 수원시 |
거주|이주지 | 노곡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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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단소 | 백인관 묘소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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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화암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로5길 7-18[노곡동 산 79-1]![]() |
성격 | 문관 |
성별 | 남성 |
본관 | 수원(水原) |
대표 관직 | 이부전서|대제학 |
고려 후기 대구 지역에 은거한 문관.
백인관(白仁寬)[1341~1421]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자는 사달(士達), 호는 선정(禪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부시랑 백원태(白元泰)이고, 할아버지는 평장사 백천뢰(白天賚)이다. 아버지는 상장군을 지낸 백존유(白存儒)이다. 부인은 옥산장씨((玉山張氏)이다.
백인관은 1358년(공민왕 7) 승보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368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부전서(吏部典書)와 집현전대제학(集賢殿大提學)에 이르렀다. 고려 말 관직을 내려놓고 본향(本鄕)인 수원의 산골짜기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부모를 모셨다. 태종(太宗)이 백인관의 학문과 인품을 애석하게 여겨 세 번이나 불렀으나 끝내 출사하지 않았다. 이후 금오산으로 이주하여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와 나라 잃은 슬픔을 서로 위로하며 지냈다는 일화가 전한다. 백인관은 길지를 찾아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자리를 잡고 은거하다가 1421년(세종 3) 사망하였다.
백인관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다.
백인관은 1421년 사망한 뒤 정헌대부(正憲大夫)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의 화암서원(華巖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