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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048
영어공식명칭 Ssireum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심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두 사람이 샅바를 잡고 상대를 먼저 넘어뜨려 승부를 가리는 민속놀이.

[개설]

씨름은 두 사람이 서로 허리와 다리에 묶은 샅바를 잡고 상대를 먼저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우리나라 전통 민속놀이이다. 과거 대구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단오에 남자들이 하는 놀이였는데, 기록에는 단오뿐만 아니라 7월이나 추석 때에도 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씨름 대회를 하면 마을 단위로 응원을 하였는데, 장사가 속한 마을에서는 농기와 풍물을 준비하여 응원하다가 우승을 하면 농기를 앞세우고 풍물을 치면서 마을로 돌아가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연원]

씨름의 어원은 아직 확실한 정설은 없으나, 서로 버티면서 힘을 겨룬다는 뜻의 영남 사투리 ‘씨룬다’에서 파생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고구려 고분의 벽화에서 씨름하는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씨름은 삼국시대 이전에 성행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문헌상으로는 『고려사(高麗史)』에 씨름에 관한 기록이 처음 나타나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세시풍속으로 씨름을 거론하였다. 씨름은 조선 전기에는 궁중에서도 성행하여 양반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씨름을 금지하여 일반 백성의 전통 놀이로는 정착되지 못하였다. 조선 후기, 개항기에 이르러 비로소 씨름은 농한기에 피로를 푸는 일반 서민의 전통 놀이로 발전하였다. 대구 지역에서는 일제강점기 초반에 일시적으로 씨름 대회가 중단되었다가 1922년 초파일인 5월 4일 대구토목공려회의 주최로 씨름 대회가 열려 전국 각지에서 온 장사들과 일행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1935년 창립한 영남체육회가 첫 사업으로 전조선씨름대회를 개최하고 이후 명절 때마다 남선씨름대회, 전조선씨름대회 등을 개최하였다. 이후 영남체육회는 1938년 친일 단체인 조선체육협회로 흡수되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씨름은 심판과 흰 무명천으로 만든 샅바, 경기장이 있어야 한다. 경기장은 모래판이나 넓은 마당이 원칙인데, 실내일 경우 매트 위에서 할 수도 있다. 대구 지역에서는 예전부터 수성천변, 무태천변, 강창천변에서 씨름판이 벌어졌으며, 특히 매년 5월 보리가 익을 때가 되면 성서 지역과 경상남도 고령군 다산면이 접하는 지점이자 낙동강금호강이 합쳐지는 지점의 백사장에서 양강합수씨름대회가 열렸다.

[놀이 방법]

씨름은 두 사람이 각자 샅바 고리를 오른쪽 대퇴부 상단에 끼워 샅바를 맨다. 양측이 서로 샅바를 잡은 뒤 양 무릎을 모래 위에 닿게 하고 오른쪽 어깨를 서로 닿게 한 채 심판의 신호에 따라 일어난다. 경기가 시작되면, 먼저 상대방을 넘어뜨리거나 상대방의 무릎이나 손 등을 땅에 닿게 하면 이긴다. 보통 3판 2승으로 진행되고, 이긴 사람은 계속 다른 사람과 싸워 올라가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아이에서부터 어른으로, 하수에서 고수까지 순차적으로 경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연령과 체급, 그리고 실력 차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절된다.

[현황]

씨름은 현재 현대적인 스포츠 종목이 되어 전문 선수들이 경쟁하는 전국 규모의 씨름 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대구광역시는 명절이나 경축일, 구민 축제 등에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속 씨름 대회를 생활체육 행사로서 개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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