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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면 도동리 서흥김씨 집성촌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1037
한자 求智面 道東里 瑞興金氏 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도동리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성격 집성촌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서흥 김씨 집성촌.

[개설]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는 서흥김씨(瑞興金氏)의 집성촌이다. 서흥인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주향하는 도동 서원(道東書院)이 있는 곳이다. 이 마을에 한훤당의 후손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입향조가 누구인지는 기록에 없지만 예조 참의를 지낸 김굉필의 증조할아버지가 현풍 곽씨(玄風郭氏)와 결혼해 처가인 현풍으로 내려오면서부터 현풍인이 되었다는 고증으로 미루어 입향지가 도동이 아닌지 추측되며, 김굉필 또한 출생은 서울에서 하였지만 성장기에 도동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연고로 도동에 김굉필을 주향하는 도동 서원이 건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명칭 유래]

도동리의 지명은 마을에 도동 서원이 있다고 하여 도동이라 이름 붙였다.

[자연환경]

낙동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행되다가 다시 남쪽으로 흐르는 지형상의 동남쪽에 위치한 자연 마을이다. 마을의 뒤편은 진등산[281.5m]이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마을이다.

[현황]

도동 서원은 1568년(선조 1)에 유림에서 ‘현풍현동(玄風縣東) 비슬산록(琵瑟山麓)’에 세워 쌍계 서원이라 하였다. 1597년(선조 30)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605년(선조 38) 김굉필의 연고지인 현 위치로 사우를 중건하여 보노동 서원(甫老洞書院)이라 하였다. 1607년(선조 40)에 '도동 서원'이라 사액되자 동명도 보노동에서 도동으로 고쳤다.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 집권기 때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도동 서원 입구 왼쪽에 단칸 규모의 맞배 기와집인 비각 안에 김굉필 신도비가 보호되고 있다. 김굉필은 연산군(燕山君) 때의 문인으로 자는 대유(大猷)이고, 호는 한훤당이며, 충좌위 사용(忠佐衛司勇) 김유(金紐)의 아들이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며, 저서로는 『한훤당집(寒暄堂集)』, 『가범(家範)』, 『경현록(景賢錄)』 등이 있다. 신도비는 사우당(四友堂) 김대진(金大振)이 후손과 사림 및 경남 감사 이민구의 협력으로 세운 비석으로 장현광(張顯光)이 찬(撰)하고 사헌부 감찰인 배홍우(裵弘祐)가 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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