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4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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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步兵八十聯隊 陸軍大尉 朝鮮人 一家族 暴行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27년 8월 대구에 주둔하던 보병80연대 소속 육군 대위 세가와 마사오가 조선인 일가족을 폭행한 사건.
[경과]
1927년 8월 초 대구 주둔 보병 80연대 소속 육군 대위 세가와 마사오[瀨川正雄]가 자신의 조카와 말다툼을 하던 신구실(辛玖實)을 폭행하였다. 이어 세가와 마사오는 신구실의 여동생과 삼촌을 폭행하고, 어머니까지 머리채를 잡고 폭행하였다. 피해자 신구실은 10세의 어린이였고, 입원 치료를 받을 만큼 심한 폭행을 당하였다.
보병80연대는 연대장의 부관이 나서 피해 가족과 사회운동단체에 사과하며 양해를 구하였다. 대구의 대구소년동맹, 대구청년동맹 등의 사회운동단체들은 육군 대위 세가와 마사오의 폭행사건을 개인 사건이 아니라 전 민족에 관한 일로 규정하고 대응에 나섰다.
대구청년동맹은 위원회를 개최하여 보병80연대장과 가해자의 사과문을 신문에 싣고 사죄장을 사회단체에 낼 것과 가해자를 육군 형법에 따라 처리할 것을 요구하였다. 대구청년동맹은 가해자를 성토하는 격문을 시내 주요 곳곳에 뿌릴 것을 결의하고, 격문과 이유서 작성위원 및 수교(手交) 위원을 선정하였다. 대구청년동맹의 수교위원들은 보병80연대를 방문하여 연대장을 만나 구두 사과와 가해 사실을 육군성에 보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대구청년동맹이 요구한 사과문과 사죄문은 거부하였다.
참고로 보병80연대는 일본군 제20사단 보병 40여단의 소속으로 1916년 4월 대구에 배치된 부대였다.
[결과]
대구청년동맹은 보병80연대장과의 면담을 마친 후 실행위원회를 열고 대구경찰서의 폭압적 탄압으로 인하여 세가와 마사오의 조선인 일가족 폭행사건 관련 격문 산포와 시민대회 개최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병80연대장의 사과를 수용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의의와 평가]
보병80연대 소속 육군 대위 세가와 마사오의 조선인 일가족 폭행사건은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 폄훼가 일상적으로 드러난 민족 차원의 사건이었다. 대구청년동맹 등 대구의 사회운동단체의 노력으로 보병80연대장의 사과를 받아낸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