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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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손처눌이 임진왜란 후 대구의 연경서원을 중건하고 서사원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난후중창연경서원 차낙형운(亂後重刱硏經書院次樂兄韻)」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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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의 성리학과 성리학자 그리고 유적·유물. 대구광역시 동구는 시내의 중심지인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신암동에서 동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안심지역을 포함하고, 북쪽으로는 팔공산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이곳에는 1563년(명종 18)에 건립된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이 있었다. 그래서 대구광역시 동구는 대구 성리학의 출발점이자 산실이었다고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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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학자인 채병달이 대구광역시 화암산에 올라 연경서원의 유허지를 바라보고 지은 한시. 「등연경화암(登硏經畫巖)」의 저자 채병달(蔡炳達)[1879~1957]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중삼(仲三)이고, 호는 우당(愚堂)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美垈洞) 출신이며, 곽종석(郭鍾錫)[1846~1919]의 문인이다.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광역시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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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 문인 학자인 이익룡이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화암에 올라 연경서원을 바라보고 지은 한시. 「등화암(登畫巖)」의 저자 이익룡(李翼龍)[1732~1794]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이오(而五)이고, 호는 요산당(樂山堂)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대암리(臺巖里)에서 태어났다. 이익룡은 만년에 요산당(樂山堂)을 지어 학문 연마에 매진하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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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는 1914년 건립된 효자 배석유의 정려각. 배석유 효사각은 조선 후기 철종 조의 인물인 배석유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려각이다. 본관이 달성인 배석유는 사후에 효자 정려와 함께 영릉 참봉에도 증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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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 대구 출신 학자인 손처눌이 이시발, 조홍립과 함께 대구의 화암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 「배이방백양구 조통판극원 홍립 유화암(陪李方伯養久 曺通判克遠 弘立 遊畫巖)」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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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년에 조선 전기 학자이며 의병장인 이주가 손처눌, 유요신과 함께 대구의 화암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 「신묘맹추 여손기도 유성유 유화암(辛卯孟秋與孫幾道柳聖兪遊畫巖)」의 저자 이주(李輈)[1556~1604]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이주는 1556년(명종 11)에 대구부 수성현 파잠리(巴岑里)[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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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의병장이며 학자인 서사원이 손처눌에게 보내는 편지. 「여손처눌(與孫處訥)」을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기를 중심으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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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조선 후기 학자인 채치룡이 방문하고 화암에 올라 지은 한시. 「여제현 알연경서원 등화암(與諸賢 謁硏經書院 登畫巖)」를 쓴 채치룡(蔡致龍)[1727~1785]은 본관이 인천(仁川)이고, 자는 운오(雲五)이며, 호는 양매당(養梅堂)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 출신이다. 아버지는 채두명(蔡斗命)이고, 어머니는 부림홍씨 홍응하(洪應夏)의 딸이다. 친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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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있었던 조선 전기에 건립된 사액서원이자 대구지역 최초 서원. 연경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과 매암(梅巖) 이숙량(李淑樑)[1519~1592]을 제향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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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었던 대구 최초의 서원. 연경서원은 1563년에 건립되었으며 1세대, 2세대, 3세대 유학자를 양성하여 대구를 교육과 문화, 학술의 고장으로 만든 대구교육의 원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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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 연경서원의 이건을 기록한 편액. 연경서원 이건기문 편액(硏經書院移建記文篇額)은 조선 후기에 대구 지역의 유학 교육에서 중추적인 구실을 담당하였던 연경서원의 1775년 이건에 관하여 기록한 편액이다. 대구 지역 최초의 서원이었던 연경서원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563년(명종 18)에 건립을 시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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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연경동(硏經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31개 법정동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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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경창의 강학소 계동정사와 대구 유학. 대구유학(大邱儒學)은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계동정사(溪東精舍)에서 시작되었으며, 계동정사는 대구유학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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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학자인 구연간이 대구의 연경서원과 화암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화암(畵巖)」의 저자 구연간(具然侃)[1844~1917]의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는 성강(聖剛)이며, 호는 근와이다. 아버지는 구택조(具宅祖)이고, 어머니는 부림홍씨(缶林洪氏) 홍익대(洪益大)의 딸이다. 친모는 단양우씨(丹陽禹氏) 우형간(禹衡幹)의 딸이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5]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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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대구 출신의 학자인 채성원이 연경서원과 화암을 노래한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화암경차노선생운(畵巖敬次老先生韻)」은 연경서원과 화암을 노래한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이다. 저자 채성원(蔡星源)[1870~1932]의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사규(士奎), 호는 공산(公山)이다. 아버지는 채세동(蔡世東)이고, 어머니는 부림홍씨(缶林洪氏) 홍우찬(洪禹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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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유학자인 우하구가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의 화암과 연경서원을 둘러보고 지은 한시. 「화암 경차퇴도선생운(畫巖 敬次退陶先生韻)」의 저자 우하구(禹夏九)[1871~1948]의 본관은 단양(丹陽)이고, 자는 영서(永敍)이며, 호는 백괴(百愧)이다. 대구부 월배면 상인리(上仁里)[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우우동(禹友東)이고, 어머니는 달성서씨(達城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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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동화천 변에 있는 하식애. 『대구읍지(大丘邑誌)』 ‘제영(題詠)’ 편에 보면 퇴계 이황의 「연경화암(硏經畵巖)」이라는 한시가 나온다. 화암[그림바위]은 1563년 대구 최초로 설립된 연경서원 인근에 있는 하식애(河蝕崖)이며 ‘눈썹바위’로도 불린다. 암석의 구조적 특성과 기묘한 외양으로 인하여 신비감이 더하여진다. 대구 관련 고문헌에 기록된 2개의 바위 중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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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의 유학자인 채귀해가 늦봄에 대구의 연경서원 유허지를 둘러보고 지은 한시. 「화암모춘(畵巖暮春)」의 저자 채귀해(蔡龜海)[1850~1905]의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낙응(洛應)이며, 호는 치헌(痴軒)이다. 아버지는 채석범(蔡錫範)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조택승(曺宅承)의 딸이다. 집안이 대대로 대구부 해북촌면(海北村面) 미대리(美岱里)[현 대구광역시 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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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산. 화암산은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과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사이에 위치하는 해발고도 110m의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