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청동
-
193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추진된 도시계획과 지방행정구역의 재편. 1931년 대구광역시 동구에 도시계획이 추진되었다. 특히 ‘대(大)대구의 건설’을 목표로 한 도시계획이 추진되면서부터였다. 당시 새롭게 추진된 도시계획은 크게 하나는 대구 인근 지역을 대구에 편입하는 시구 개정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대대구의 건설의 목표로 하는 사단 유치, 비행장 건설, 동촌 개발, 종방 유치...
-
개항기 대구에서 결성된 대구 거주 일본인들의 자치단체. 대구일본거류민단(大邱日本居留民團)은 1906년 11월 대구에서 거주 중이던 일본인들이 결성한 자치단체이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 후기 대구 지역 유학자 모당 손처눌의 묘소.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은 1553년(명종 8) 6월 25일 대구 수성 상동에서 출생하여 1634년(인조 12) 6월 15일 평소에 강학하였던 영모당(永慕堂)에서 82세로 사망하였다. 9월 12일 수성구 황금동[황청동] 선영 아래 손좌(巽坐)에 장례하였다. 장례에 모인 사람은 420여 명이었다....
-
조선 후기 경상도 대구 도호부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일직(一直).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 증조할어버지는 참봉(參奉) 손세경(孫世經), 할아버지는 현감 손치운(孫致雲)이다.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을 지낸 손수(孫邃), 어머니는 한산 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처는 광주 이씨(廣州李氏) 이원경(李遠慶)의 딸과 창녕 조씨(昌寧曺氏)[하성 조씨(夏城曺氏)]...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수성구 일대에 있었던 상수도 보급과 유원지 활용 목적의 조합. 일제는 1914년 3월 1일에 지방행정구역 개편을 통하여 대구부와 달성군을 분리하였고, 수성면은 달성군에 편입되었다. 수성면은 1920년대 초반 4만 석의 쌀을 생산할 정도로 비옥하였고, 달성군 내에서도 대표적인 쌀 생산지였다. 이러한 이유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달성군에서 가장 많이 이주한 곳은...
-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통강의 재개를 알리기 위하여 1615년에 지은 안내문. 「통독회문(通讀回文)」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
-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이루어지는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 분배와 관련된 지방자치단체의 제반 활동. 행정은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까지는 국가의 질서 유지에 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 행정은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뿐만 아니라 수도·전기·교통·통신 등...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황금1동 주민들의 행정 복지 사무를 맡아 보는 행정기관. 대구광역시 수성구청에 속하는 황금1동 행정복지센터는 법정동인 황금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기관이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1동은 수성구의 중심부에 있으며 자연과 생활 공간이 조화된 쾌적한 주거 지역이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황금2동 주민들의 행정 복지 사무를 맡아 보는 행정기관. 대구광역시 수성구청에 속하는 황금2동 행정복지센터는 법정동인 황금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기관이다....
-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속하는 법정동. 황금동(黃金洞)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법정동 26개 중 하나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장 손처눌(孫處訥)이 피난 와서 이룬 마을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