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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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聲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헌 |
창간 시기/일시 | 1932년 9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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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간|종간 시기/일시 | 1933년 1월![]() |
제작|간행처 | 잡지 『동성』 발행소 -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2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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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예 잡지 |
관련 인물 | 유한식|황수창 |
창간인 | 유한식 |
발행인 | 유한식 |
총호수 | 통권 4호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유한식이 발행한 문예잡지.
『동성』은 유한식(柳漢植)[발행인]이 동성사에서 발행한 잡지이며, 인쇄는 선일(鮮一) 인쇄소[대표 황수창(黃洙昌)]에서 하였다. 당시 『동성』의 발행처 주소는 대구부 명치2정목 345이며, 조직은 사장 이종건, 주간 류입영, 영업 담당 황수창이었다. 참여 동인으로는 홍영근, 정춘자, 최동희, 은영표 등이다.
『동성』은 시, 소설, 시나리오 등 문예 작품과 평론, 기행문, 역사 등의 글을 실었다. 대구 출신 영화감독 이규환(李圭煥)[1904~1982]은 「한울을 뚫은 자여」를 발표하였는데, 이규환의 출세작은 「임자 없는 나룻배」[1932]이다. 『동성』의 창간호 권두언을 홍효민이 썼다. 그 당시 홍효민은 대구에서 발행된 잡지 『문원』[1937년 4월 창간]에도 글을 발표한 것으로 보아 대구와 어떤 인연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황이주의 「대구는?」은 대구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 쓴 글이다. 그 외 눈여겨볼 것은 ‘외래어 사전’ 코너이다. 여기에는 당시에 유통되던 서양 외래어에 대해서 뜻풀이를 하였다. 그런데 정작 『동성』은 난해한 한자를 많이 사용하였다.
『동성』은 문예지를 표방하면서 1932년 9월 창간되었으나, 2호부터는 논설의 분량이 늘어나고 문예란이 줄어들어 원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였다. 『동성』은 1933년 1월 폐간되었다.
『동성』은 창간 당시[1932] 종합 문예지로 출발하였으나, 시나 소설 등 문예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평론, 외국 문예 사상 등의 번역, 기타 사회문제[농촌문제와 여성문제 등]를 포괄적으로 다룬 종합잡지였다. 특별한 점은 창간호부터 제3호에 이르기까지 대구 지역을 조명하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대구에 기반을 둔 잡지임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