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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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沈[達城郡] |
영어공식명칭 | Seo Chim |
이칭/별칭 | 성묵(聖默),구계(龜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순한 |
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성묵(聖黙), 호는 구계(龜溪 ).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서균형(徐均衡)으로 대구 옥계 서원(玉溪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어머니는 광산 김씨(光山金氏)이다. 부인은 고성 이씨(固城李氏)이다.
1426년(세종 8) 가뭄으로 인한 재해와 홍수로 인한 수해가 자주 일어나자 세종이 당시 연산 도호부사로 있던 서침(徐沈)과 조양진 첨절제사(兆陽鎭僉節制使) 안종렴(安從廉) 등을 불러, 백성들이 가뭄과 홍수로 고통이 말이 아니니 구휼은 물론이고 각 고을의 사창에서 백성에게 꾸어 주는 곡식을 정성껏 잘 분급하여 처리할 것을 부탁하였다. 이에 서침 등이 재해와 수해 기간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게 임무를 잘 완수하였다. 또한 서씨 일문의 세거지인 달성은 경상도 지역의 요새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 세거지 땅을 지역 요새로 사용할 수 있게 내어 준 공을 인정받아 포상을 받게 되었다. 서침이 포상 대신 환상(還上)의 모곡(耗穀)[백성들로부터 세곡을 되돌려 받을 때 운반하는 과정이나 동물의 해로 손실되는 양을 추가한 양]을 감하여 달라고 하였다. 이로 인해 인근 주민들의 환영을 받게 되었고, 국가로부터는 남산의 옛 역(驛) 터와 연신지(蓮信池), 신지(新池) 등을 하사받았다. 1433년(세종 15) 첨지중추원사가 되었고, 전의소감(典醫少監)을 거쳐 다음 해 전라도 처치사(全羅道處置使)가 되었다.
묘는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에 있다.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위치한 구암 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