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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045
한자 彩雲平野
영어공식명칭 Chaeun Pyeongya Plain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채운동|고대면|정미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추윤
[상세정보]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채운동 역천 주변에 발달된 간척 평야.

[개설]

채운평야(彩雲坪野)채운들이라고도 부르며, 당진시 중앙의 당진 2동과 북서쪽 고대면정미면에 걸쳐서 역천을 따라서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은 들이다. 채운평야는 대규모 미작 지대이다.

평야는 크게 하성 퇴적 평야, 해성 퇴적 평야, 침식 평야로 나누는데, 역천은 방조제가 막히기 전에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감조 하천이었다. 따라서 바다와 인접한 하류 쪽인 채운평야, 용두 평야 일대는 해성 퇴적 평야이고 중류나 상류 지대인 염솔 평야 지대는 하성 퇴적 평야가 중심을 이루었다. 하성 퇴적 평야는 세분하면 범람원, 삼각주, 선상지 평야 등으로 나누는데, 삼각주는 대표적인 하성 퇴적 평야이지만 아산만에 유입되는 역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매우 심하여 삼각주 평야가 형성되지 못한다. 범람원은 하천이 홍수 시에 하천 퇴적물이 쌓여서 형성된 것인데 수해의 위험이 항상 따르고 습하다. 범람원은 흐르는 동안 하도 연변에 긴 자연 제방을 형성한다. 당진 역천의 상류 지역은 범람원 평야에 속한다. 염솔 평야는 범람원 평야에 속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평야는 범람원 평야이다. 범람원을 흐르는 하천은 유로가 극히 불안정하여 하도가 자주 변한다. 해성 퇴적 평야는 세분하면 간척 평야와 해안 평야로 나눌 수 있는데, 간척 평야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간사지에 제방, 즉 언(堰)을 축조하여 해수의 침입을 막고 담수로 개답하여 답작 지대로 만든 평야이다. 채운평야는 간척 평야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역천 주변의 넓은 간사지를 인공적으로 간척하여 개답한 평야 지대이다.

『해동 지도(海東地圖)』 당진 편에는 채운교(彩雲橋)와 상채운포(上彩雲浦) 등이 묘사되어 있다. 『조선 지지 자료』(당진)에 채운평(彩雲坪)이 채운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채운포와 채운보가 태성리에 있다는 내용도 보인다. 본래 ‘채운(彩雲)’이라는 지명은 “그 지역에 큰 경사나 위인이 있으면 오색운(五色雲)의 징조가 나타난다.”는 중국의 풍수 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전한다. 채운(彩雲)은 변종 구름의 한 가지 종류로 구름 자체에 색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광의 회절 현상에 의해 매우 선명하게 색이 붙어 보이는 현상이다. 채운은 태양 가까이에 있는 권적운에 일어나기 쉽고 고적운이나 적운에서 보이는 경우도 있다. 채운평야에 연속된 고대면 용두리 일대 평야를, 고대면민들은 별도로 용두 평야(龍頭平野)라고 부른다. 역천을 두고 하류 쪽에서부터 고대면의 용두 평야, 진관 평야, 채운동채운평야, 정미면의 염솔 평야가 상류로 올라가면서 분포하고 있다.

[명칭 유래]

서산 가야산에서 발원하여 운산을 거쳐서 당진시 정미면, 고대면, 채운동 앞을 흐르는 역천의 하류인 채운포(彩雲浦) 주변에 형성된 평야라 하여 채운평야라 부른다. 또는, 역천채운포에 아치형 돌다리가 가설되었는데, 그 돌다리 위로 오색구름이 이는 채운이 나타났다 하여 이 일대를 채운평야라 부른다. 포구에 있던 주점에 몰렸던 선원들에게 후한 인심을 써서 칭송이 자자한 채운 아씨에 대한 전설도 전해진다. 이 일대는 채운 석교, 채운 아씨, 채운평야, 채운동 등 ‘채운’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채운포에는 조선 시대 당진현의 북창(北倉)이 있었서 배가 드나들었다. 북창은 주변의 평야 지대에서 생산된 조세미를 보관하던 창이다.

[자연환경]

당진의 제2하천인 역천 주변은 상류의 하성 퇴적 평야 및 하류의 해성 퇴적 평야 지대로 나누어지는데, 채운동 일대는 해성 퇴적 평야 지대이다. 예전에는 상류인 관음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간척 평야는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는 간사지(干瀉地)를 인공적으로 개답하여 만든 평야이다. 충남 당진의 삽교천, 역천, 남원천 일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의 간척 사업은 고려 시대 이래 시작되어 조선 시대에 와서 지역에 따라 부분적으로 이루어졌고, 일제 강점기에 이어서 최근까지도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당진 우강면 일대는 조선 시대에 해면 간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옛 기록이 있다. 제방을 축조하여 간척지를 조성하면 제방 바깥쪽으로 새로운 간사지가 나타난다.

일제 강점기에는 학이 많이 모여 들어서 학 도래지로도 유명했다.

[현황]

방조제가 막히기 전에는 아산만 바닷물이 원채운교 앞까지 들어왔으며, 주변은 개펄이었으나 간척에 의해서 농경지로 개답되고 현재는 경지 정리가 되어서 기반식으로 기하학적 패턴이 잘 나타나 있다.

역천을 사이에 두고 당진시 채운동, 우두동, 행정동, 옥현동과 고대면 용두리, 진관리, 항곡리정미면 봉생리 등이 서로 읍면동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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