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1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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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頭髮樣式 |
이칭/별칭 | 머리 모양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순희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의 두발 양식은 시대에 따른 당진 지역 주민들의 머리 모양의 변천.
[개설]
두발 양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보인다. 신분 제도가 생기면서 머리 모양은 신분을 나타내는 형태로 변화하고 발전해 왔다. 충청남도 당진시 역시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따라 다양한 변천을 거쳐 왔다.
[두발 양식의 변천]
1. 고대의 두발 양식
충청남도 당진시의 두발 양식을 알 수 있는 것은 삼국 시대 백제의 기록부터이다. 남자는 상투[수계]를 했고, 여자는 얹은머리, 쪽진머리, 푼기명머리, 묶은 중발머리, 상투가 있었다. 상투는 기혼 남녀[주로 남자]가 머리를 올려 하나의 상투를 트는 것이고, 얹은머리는 머리를 뒷쪽에서 앞쪽으로 감아 돌려 끝을 앞쪽으로 맺은 모양이며, 쪽진머리는 머리를 뒤통수에 낮게 트는 양식이고, 푼기명머리는 좌우 양 볼에 머리를 일부 늘어뜨린 양식이며, 묶은 중발머리는 아직 덜 자란 짧은 머리를 뒷머리에 낮게 묶은 형식이다. 백제의 아좌 태자가 그렸다고 하는 일본의 성덕 태자(聖德太子) 상에서는 쌍상투도 보인다. 그리고 『북사(北史)』의 백제 기사에 "미가녀변발수후(未嫁女辯髮垂後)"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출가한 여자가 반발(盤髮)하는 데 비하여 미혼 여자는 머리를 땋아 뒤로 늘어뜨리는 변발을 했음도 추정할 수 있다. 이때 처녀는 붉은색 댕기를 들이고 남자는 흑색 댕기를 들였다.
고려 시대의 『고려도경』에 보면 고려 여성의 머리 모양에 대하여 "부인의 머리는 귀천 없이 한 가지로 들어 올려 붉은 비단으로 묶고 작은 비녀를 꽂았으며, 나머지 머리는 늘어뜨렸다."라고 했고, 미혼 여자의 머리는 "붉은 비단으로 묶고 그 나머지는 풀어서 늘어뜨렸는데 남자아이도 그와 같이 하되 검은 비단으로 묶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시대 여자들은 머리를 수식(首飾)하기 위하여 여러 모양의 비녀와 댕기를 사용하였다. 비녀는 잠두(簪頭)의 형에 따라 봉, 용, 원앙, 새머리, 화월(花月), 대, 매화, 목련, 국화, 모란, 석류, 호도 등 종류가 다양하고 재료는 금, 은, 놋, 백동, 옥, 비취, 산호, 흑각, 진주, 영락, 나무, 대, 뼈, 뿔 등이 사용되었다. 댕기는 보통 처녀들이 머리를 땋고 그 끝에 장식하던 것으로 제비부리댕기, 큰댕기, 앞댕기, 도투락댕기, 말뚝댕기 등이 있다.
쪽댕기는 쪽을 질 때 사용하는 것으로 젊은 사람은 홍색, 나이가 들면 자주색, 과부는 검정색, 상제는 흰색, 노인이 부부가 함께 살아 있으면 자주색 댕기를 했다. 제비부리댕기는 땋은 머리 끝에 들이는 것으로 처녀는 홍색, 총각은 검정색이다. 큰댕기는 활옷을 입었을 때 하며 앞댕기는 앞에 들이는 댕기이고, 금박이나 양 끝에 진다.
2. 근대 이후의 두발 양식
을미년 단발령과 더불어 망건이 없어지자 머리는 중머리 하이칼라 머리가 되어 정자관(程子冠)도 없어지고, 파나마모자, 맥고모자, 중절모자가 출현했다. 조선 후기 여성들의 머리 모양 그대로 처녀들은 댕기머리였고,부녀자들은 쪽진머리를 하였다. 다만 쪽진머리가 옛날과 같이 머리 뒤로 올라갔으며, 가발의 풍습도 전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1907년 최활란이 도쿄에서 유행하던 '팜프도어[히사시까미]'를 하고 돌아왔다. 너무나도 이례적이었던 만큼 한때 학생들 사이에서도 유행하였으나 오래가지 못하였다. 1920년대 우리나라 화신 백화점에서 미장원이 개업을 하고 1937년경부터 '퍼머넌트'가 등장하였지만 당진은 시골이라 예전 쪽진머리 그대로 하고 다녔다.
3. 1960년대 이후 당진의 두발 양식
1960년대 후반부터 충청남도 당진시에서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기혼 여성들 사이에 파마 머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파마의 가격은 '쌀 한 말' 가격이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여성들의 머리 모양도 파마나 묶지 않은 생머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머리 전체를 파마하는 것은 주로 기혼 여성들이 많이 했는데 일할 때 흘러내리지 않았기에 편리성으로 인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혼 여성들은 긴 생머리를 하거나 어깨 길이에서 머리를 바깥으로 구부려 내는 아웃컬[일명 소도마끼]을 하거나 안으로 구부려 넣은 형태를 주로 하였다. 여학생들은 주로 학교의 교칙에 따라 단발머리이거나 땋은 머리였고 남자들은 짧은 상고머리 형태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현재처럼 자유로운 두발 양식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당진에 컬러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부터로 보여진다. 컬러텔레비전의 보급은 유행을 금세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에는 웨이브컬에 싫증이 난 젊은 여성층에서 스트레이트 파마와 풀어 헤친 듯한 웨이브 파마가 함께 유행하였고, 헤어 무스와 젤 또는 스프레이를 사용하여 앞머리를 세우는 스타일이 유행하였다.
1990년대에는 여성들이 각자의 개성을 추구하면서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헤어스타일이 정착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1960년대의 복고풍으로 돌아가 앞머리는 둥글게 양감을 살리고 나머지 머리는 아이론과 세팅을 하지 않는 스트레이트한 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1990년대 중반부터는 세팅과 아이론으로 머리끝을 바깥과 안으로 말은 복고풍의 여성다운 머리 모양과 더불어 가위로 자유분방하고 불규칙하게 커트한 개성 있는 헤어스타일이 유행하였다. 1994년부터 젊은 여성들은 밴드와 핀을 사용하여 머리에 악센트를 주거나 머리 전체나 일부를 블리치(Bleach)해서 각자의 취향에 맞는 색깔로 염색하여 더욱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연출하였다. 또한 연예계나 최첨단의 멋을 추구하는 여성들은 가발을 사용해 한 가지 스타일에서 벗어나 변화를 추구하는 풍조가 유행하였다. 최근에는 염색이나 파마, 생머리 등 더욱 개성적이고 자유로운 두발 양식이 보편화되어 있는데 파마를 하더라도 보글거리는 파마가 아니라 고데나 드라이를 한 듯한 자연스러운 머리 모양이 유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