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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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廣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김우택 |
[정의]
고려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 일대를 관할하던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시대의 양광도(楊廣道)는 현재의 경기도 남부 지역과 강원도 일부 지역, 그리고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의 거의 모든 지역을 포함하였다. 이 중 양주(楊州)와 광주(廣州)의 지명에서 양광도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의 양광도조에는 이 지역의 연혁이 간략히 정리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양광도는 “원래 고구려와 백제의 땅으로, 성종(成宗) 14년에 경내(境內)를 나누어 10도(道)로 삼아 양주와 광주 등의 주현(州縣)은 관내도(關內道)에 소속시키고, 충주(忠州)와 청주(淸州) 등의 현(縣)은 충원도(忠原道)로 삼고, 공주(公州)와 운주(運州) 등의 주현(州縣)은 하남도(河南道)로 삼았다.
예종(睿宗) 원년(元年)에 합하여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로 삼았는데, 명종 원년에 나누어서 2도로 삼았다가, 충숙왕 원년에 양광도로 정하였고, 공민왕(恭愍王) 5년에 충청도(忠淸道)로 삼았다. 1경(京)·3목(牧)·2부(府)·27군(郡)·78현(縣)을 관령(管領)하였다”라고 하였다.
[내용]
『고려사』 지리지에 따르면 양광도에는 1경·3목·2부·27군·78현이 소속되어 있었다. 1경은 치폐가 거듭된 남경(南京)을 지칭하며, 3목은 광주·충주·청주이다. 2부는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와 천안부(天安府)를 말한다.
[변천]
양광도에 해당하는 지역이 하나로 묶인 것은 995년(성종 14)의 10도 설치 당시의 일이었다. 이때 양주와 광주를 포함한 지역이 관내도로 묶였다. 이후 5도 안찰사제가 시행되면서 1106년(예종 즉위년)에 양광충청주도로 통합되었다. 1171년(명종 즉위년)에 다시 양광주도(楊廣州道)와 충청주도(忠淸州道)로 분리되었으나, 곧 다시 합쳐져 양광도 내지 충청도로 통칭되었다. 1314년(충숙왕 즉위년)에 양광도가 공식 명칭으로 확정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충청도로 바뀌었으나, 이후 양광도가 다시 공식 명칭으로 확립되었다. 조선 시대에 양주와 광주 등이 경기(京畿)로 포함되면서 양광도라는 명칭은 의미가 없어졌고, 양주와 광주를 제외한 부분에 충청도라는 명칭이 다시 채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