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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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睦叙欽 |
이칭/별칭 | 순경(舜卿),매계(梅溪),충정(忠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52-1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민정 |
출생 시기/일시 | 1571년 - 목서흠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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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06년 - 목서흠 양구 현감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652년 - 목서흠 졸 |
묘소|단소 | 목서흠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2 |
사당|배향지 | 모현재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2 |
성격 | 문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사천(泗川) |
대표 관직 | 동지중추부사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순경(舜卿), 호는 매계(梅溪). 할아버지는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명인 현헌공(玄軒公) 목세칭(睦世秤)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목첨(睦詹)이다. 어머니는 증 병조참판 정건(鄭謇)의 딸이다. 부인은 권근(權近)의 증손이자 권탁(權晫)의 딸인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슬하에 5남 2녀를 두었다. 목서흠(睦叙欽)[1571~1652] 이후 가문이 크게 현달하였으며, 현재에도 사천 목씨 현헌공파 충정공택은 사천 목씨 가운데 매우 큰 비중을 자랑한다.
[활동 사항]
목서흠은 음보로 관직에 나아가 호조와 형조의 낭관을 거친 후 1606년(선조 39) 양구 현감에 부임하였으나, 문묘 낙서(文廟落書) 사건의 책임을 지고 파직되었다. 1610년(광해군 2) 알성시에서 병과 1위로 급제하여 병조를 거쳐 1621년(광해군 13)에는 홍문관 수찬에 임명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북관 선유 어사로 파견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공주까지 인조를 호종하였다. 이어 광주 목사·남양 부사·부승지 등을 역임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인조를 남한산성까지 호종하였다. 양양 부사·개성부 유수를 거쳐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묘소]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다. 방학 사거리에서 우이 계곡 방면으로 방학로를 경유하여 가다가 고갯길이 나오기 직전 도로 오른쪽에 양효공 안맹담(安孟聃)과 정의 공주(貞懿公主) 묘역이 위치해 있는데, 그 능선 동쪽에 사천 목씨 묘역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최상단에 목서흠의 묘가 있다. 단분 합장(單墳合葬)의 형태로 묘표, 혼유석, 상석, 향로석, 동자석, 망주석 등의 옛 석물을 갖추고 있다. 그 외의 석물은 모두 근래에 세워진 것들이다. 묘표에는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행자헌대부 지중추부사 증시 충정공 목서흠 지묘 증 정경부인 부좌(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行資憲大夫知中樞府事贈諡忠貞公睦叙欽之墓贈貞敬夫人祔左)’라고 새겨져 있다. 충정공 목서흠 묘역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묘역 입구에는 목서흠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조경(趙絅)이 글을 짓고, 이정영(李正英)이 전액(篆額)을 쓰고, 조위명(趙威明)이 글자를 썼다. 당대 명문장가와 명필들의 글씨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비문은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에 수록되었다. 사천 목씨 묘역 입구에 있는 사당 모현재(慕賢齋)에 신위가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