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에서 무악재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무악재 유래담」은 1993년에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 강남노인정에서 마을 주민 안순창[남, 86세]에게서 채록한 것으로, 1994년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간행한 『동작구지』에 수록되어 있다. 무악재 고개는 무학대사가 ‘무악’ 고개를 넘어 다닌 데서 유래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
서울특별시 동작구를 포함하는 과거의 금주와 과주가 수록된 1451년에 편찬된 고려 시대의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는 조선 시대인 1451년(문종 1)에 편찬되었으며 고려 시대의 내용을 담은 지리지이다. 『고려사』는 총 139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지리지는 56권부터 58권, 지(志) 제10권부터 12권에 해당된다....
-
고려 말 조선 초에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을 포함한 경기 영역을 좌우 둘로 나누었다가 통합하여 설치했던 광역 행정단위. 1391년 경기를 좌도와 우도로 나눈 후, 1402년 좌도와 우도를 통합하여 경기좌우도라고 하였고, 1414년 좌도와 우도를 합쳐 경기라 칭하면서 경기좌우도는 소멸하고 경기만 남게 되었다. 『고려사(高麗史)』 권56, 지10, 지리1, 왕경 개성부,...
-
995년(성종 14)에 설치되었던 10도 중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영역을 포함하는 지방행정구역. 관내도는 고려 성종 대에 획정된 지방 체제이다. 성종은 지방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995년(성종 14) 당제(唐制)를 본받아 기존의 12목(牧)을 12주 절도사(節度使)로 개편하고 영내를 10도(道)로 개편하였다. 이 중 관내도의 영역은 양주(楊州)·광주(廣州)·황주(黃州)...
-
서울특별시 동작구·관악구와 경기도 과천시·안양시에 걸쳐 있는 산. 관악산(冠岳山)[632.2m]은 개성 송악산(松岳山), 가평 화악산(華岳山), 파주 감악산(紺岳山), 포천 운악산(雲岳山)과 함께 옛날부터 ‘경기 오악(五岳)’에 속했던 산으로, 경기 오악 중 제1악에 해당한다. 전체 면적은 19.22㎢, 약 582만 평에 이른다. 주봉인 연주대(戀主帶)를 중심...
-
1991년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조성된 삼일공원의 유래 3·1운동은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계기였다. 1919년 2월 8일 도쿄 유학생들의 주도로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2.8독립선언이 이루어지자, 이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행사에 참석하였던 여학생들은 2.8독립선언의 상황을 국내에 전하기로 뜻을 모았다. 동경여자학원 학생이던 김마리아는 1919년 2월...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안된 독립운동가. 오화영(吳華英)[1879~1960]은 3·1운동의 민족대표이며, 신간회운동과 흥업구락부사건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리고 1946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관선의원, 1950년 제2대 국회의원[민의원]으로도 당선된 정치가이다. 본관은 고창(高敞)이며, 호는 국사(菊史), 이명으로는 오하영(吳夏英), 오화...
-
정조가 화성에 조성한 아버지 장헌세자의 묘소 현륭원을 참배하기 위해 한강을 왕래할 때 노량진에 설치한 배다리. 1776년 3월,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를 계승하여 왕위에 올랐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아버지가 1762년(영조 38)에 일어난 임오화변으로 죽임을 당함에 따라 ‘죄인의 아들’이라는 오명을 짊어지고 있었다. 영조는 이러한 정조의 왕위 계승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을 통일 신라 시대인 757년부터 고려 초인 940년까지 관할하던 최상위 지방행정구역. 한주는 통일신라 시대 지방행정구역인 9주 중 하나의 명칭이다. 원래 명칭은 한산주(漢山州)였지만, 757년(경덕왕 16)에 전국의 지명을 모두 한자식으로 바꿀 때 한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에 광주(廣州)로 개칭되어 ‘한주’라는 명칭은...
-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노한이 건립한 정자. 효사정은 조선 전기 문신인 노한(盧閈)[1376~1443]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묘살이를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시묘살이 이후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개성에 묘가 있는 아버지를 추모하는 공간이었다고 전해진다. ‘효사정’이라는 명칭은 강석덕(姜碩德)[1395~1459]이 지었으며, 아들 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