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0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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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陵金氏 |
영어음역 | Gangneung Kimssi |
영어의미역 | Gangneung K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임호민 |
[정의]
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연원]
김주원이 787년에 당시 북빈경(北濱京)이었던 강릉으로 옮겨 명주 지역 9군(郡) 25현(縣)을 관장하는 명주군왕에 책봉된 이래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세습하면서 형성되었다.
[입향경위]
김주원은 김알지(金閼智)의 21세손이며,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6세손이다. 785년 선덕왕이 죽고 후사가 없자 신하들은 무열왕계의 직계인 김주원을 왕위에 등극시키기로 결의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큰 비가 내려 알천(閼川)이 범람하자 김주원이 왕궁으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이에 신하들은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을 왕으로 맞이하였다. 왕위에 오르지 못한 김주원은 어머니의 고향인 강릉으로 퇴거하게 되었다. 이후 787년(원성왕 2) 명주군왕에 책봉되어 강릉, 익령(翼嶺), 양양(襄陽), 삼척(三陟), 울진(蔚珍), 평해(平海)를 식읍으로 받고 이 지역을 통치하였다.
[세거현황]
8세기 이후 김주원 후손들은 계속해서 강릉에 거주하였으며, 조선 초기 기록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강릉 지방의 대표적인 성씨 중의 하나인 토성으로 분류하였다. 강릉을 근거지로 하여 세거한 강릉김씨는 이후 한림공파(翰林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옥가파(玉街派), 평의공파(評議公派) 등 4개의 큰 파로 구분된다.
[집성촌 현황]
1920년대 후반 조사에 의하면 강릉김씨 집성촌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등 6개 마을에 형성되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중 최근까지 집성촌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는 마을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강동면 상시동리와 하시동리, 사천면 판교리 지역이다. 이밖에도 강원도 강릉시 지변동 핸다리, 구정면 여찬리와 금광리 등에도 약간 분포하고 있다.
[관련유적]
시조인 김주원의 묘소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삼왕동에 있으며, 묘소 앞에는 무열왕 김춘추의 위패를 모신 숭렬전(崇烈殿)과 김주원의 위패를 모신 숭의재(崇義齋)가 있다. 그리고 묘 입구에는 김주원 신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