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6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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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陵官衙址 |
영어음역 | Gangneung Gwanaji |
영어의미역 | Government Office Sit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경강로 2045[명주동 38-1번지] 외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지현병 |
성격 | 관아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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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면적 | 1,7144㎡ |
소재지 주소 | 강원도 강릉시 경강로 2045[명주동 38-1번지] 외 |
[정의]
강원도 강릉시 경강로 2045[명주동 38-1번지]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강릉 관아와 관련된 건물터.
[개설]
강릉은 충렬왕 14년 강릉부로 편제된 이래 공양왕 원년 대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이러한 개편 작업이 신왕조의 개창을 위한 성격을 띠는 것이었으므로 그대로 조선조에 이어졌으며, 대도호부로서 읍격은 그 승강이 없지는 않았지만 한말까지 이어진다.
강릉대도호부의 모든 관부는 읍성 안에 배치되었다. 관아는 내아와 외아로 구분되며, 내아에는 내아(內衙) 17칸, 익랑(翼廊) 16칸, 행랑(行廊) 17칸으로 구성되었으며, 외아에는 외아16칸, 별당 8칸, 전랑(前廊) 20칸, 공수(公須) 10칸, 관청(官廳) 33칸의 규모를 갖추었다. 다음으로 객사(客舍)가 있으며, 그 정청(正廳)의 명칭이 임영관(臨瀛館)으로 9칸 규모이며, 동대청(東大廳)이 13칸, 서헌(西軒)이 6칸, 중대청(中大廳)이 12칸, 낭청방(郞廳房)이 6칸, 월랑(月廊)이 31칸, 삼문(三門)이 6칸의 규모였다.
이 밖에도 임영관 앞에는 6칸 규모의 의운루(倚雲樓)가 있었으며, 객관 앞에서 도시(都試) 때 무사들의 시험보던 장소로 9칸 규모의 사대(射臺), 사대 동쪽으로 16칸의 군기청(軍器廳), 외아(外衙) 동쪽으로 12칸 규모의 부사(府司), 부사 앞에는 18칸 규모의 작청(作廳), 외아의 문루 앞에는 10칸 규모의 군관청(軍官廳), 외아 동쪽으로 32칸 규모의 부창(府倉), 부창 앞에는 8칸 규모의 노방(奴房), 공수의 앞에는 8칸 규모의 사령청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끝으로 읍성 밖에는 읍성의 동문 밖에 22칸의 향청과 18칸 규모의 장관청이 배치되었으며, 향청 앞에는 14칸 규모의 향현사가 배치되었다.
[발굴조사 경위]
강릉시청사가 2001년 홍제동의 신청사로 이전함에 따라 강릉관아가 있던 자리에 칠사당과 객사문, 임영관지를 종합한 강릉 관아지를 복원하기로 하였으며, 이에 대한 기초자료를 수집하고자 2002년부터 2003년까지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고려 및 조선시대의 건물지, 보도시설, 석축유구, 담장지 등이 발굴조사되었다.
[변천]
강릉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강릉관아지는 일제에 의해 관아지의 건물이 헐리기 전까지 약 1000년여 동안 치소의 중심지로 역할을 담당하여 왔으며, 2001년까지 강릉시청사가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 관아지의 뒤쪽으로는 강릉부의 객사인 임영관지[사적 제338호]가 위치하고 있으며, 임영관지 앞에는 고려 말에 축조된 객사문[국보 제51호]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서쪽으로는 조선시대 일곱 가지 업무를 보았다는 칠사당[지방유형문화재 7호]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강릉관아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조선 시대 관아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