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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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堂 |
영어음역 | Daeseonangdang |
영어의미역 | Great Village Guardian Shrine |
이칭/별칭 | 대성황사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집필자 | 김경남 |
[정의]
1900년대 이전 강릉의 관아 건물 칠사당 뒤에 12지신을 모셨던 서낭당.
[개설]
대서낭당(大城隍堂)은 십이지신위 곧, 송악산지신, 태백대왕신, 남산당제형태상지신, 감악산대왕지신, 성황당덕자모지신, 신무당성황신, 김유신지신, 이사부지신, 초당리부인지신, 서산송계부인지신, 연화부인지신, 범일국사지신 등이 봉안되었던 곳이다.
강릉단오제의와 관련한 중요한 제의의 공간이 바로 대서낭당이다. 이와 관련된 서낭당으로 약국서낭당(藥局城隍堂), 대창리서낭당(大昌里城隍堂)이 있다.
[위치]
[변천]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칠사당 뒤편에 우리 고유의 신앙처였던 대서낭당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일본의 신사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일본인에 의하여 5월 단옷날 대관령국사서낭신을 모시고 지내던 제의가 금지되기에 이르렀다. 강릉 지역 한학자였던 심일수(沈一洙)의 일기를 싣고 있는 『돈호유고(遯湖遺稿)』에는 ‘융희 3년(隆熙 三年) 을유 5월 단오 무격이 대관령국사성황신을 맞이하는 것을 일본인이 금지하여 폐지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융희 3년은 1909년이니 일제는 침략이 시작되자마자 우리 민족의 기층신앙에 대한 탄압을 제일 먼저 서두른 것이다. 그곳에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책략의 일환으로 신사 건립을 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다.
[의의와 평가]
대서낭당처럼 많은 신을 모시는 것은 한국 신앙의 특징인 다신적(多神的) 신앙의 체계라 할 수 있다. 또 여러 신이 보호해 주는 복 받는 지역으로서 무속적 경향이 짙은 강릉의 특색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