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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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無月郞 |
영어음역 | Muwollang |
이칭/별칭 | 유정,유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김창겸 |
성격 | 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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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사인(思仁) |
아내 | 연화부인 |
성별 | 남 |
몰년 | 미상 |
본관 | 강릉김씨 |
추서 | 대명주군왕(大溟州郡王) |
대표관직 | 중시(中侍) |
[정의]
통일 신라 시대의 귀족.
[가계]
아버지는 사인(思仁)이고, 아들은 김주원(金周元)이다. 부인은 연화부인(蓮花夫人) 박씨(朴氏)이다.
[생애]
774년(경덕왕 3) 정월에 이찬(伊湌)으로 시중(侍中)이 되었는데, 745년 정월 아버지 사인이 상대등(上大等)에 임명된 직후인 5월에 천재지이(天災地異)를 이유로 관직을 사퇴하였다.
무월랑은 명주(溟州)[지금의 강릉]지방의 세력가인 박씨와 혼인을 맺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화부인의 집은 명주 대천(大川) 남쪽의 연화봉(蓮花峯) 아래에 있었는데, 「연화부인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라 시대에 공부하는 학생이 명주에 유학을 왔다가 양가집의 아름다운 처녀를 보고 그 미색에 반하여 처녀에게 연정(戀情)을 호소했더니, 그 처녀가 “당신이 과거에 급제하면 당신의 호소를 들어주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학생은 이 소리를 듣고 분발하여 열심히 공부한 결과 급제하였다. 한편 처녀의 집에서는 이런 사연이 있는 지도 모르고 딸을 다른 곳으로 시집 보내려고 하였다.
이 처녀의 집 북쪽에 양어지(養魚池)가 있었는데, 처녀는 무료할 때면 이 못에 가서 고기에게 먹이를 주며 돌봐주었다. 처녀의 숨은 사정(私情)을 알지 못하는 부모들은 일방적으로 혼담을 추진시키고 있었는데, 전에 약속했던 총각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어 안타까운 심정에 못에 가서 “고기야, 네가 내 심정을 알거든 이 글을 그이에게 전해 다오.”라고 하며 천에다 글을 써서 못에 던졌더니 못 속의 고기가 뛰어나와 삼켜버렸다.
그런 지 며칠 뒤에 학생이 서울의 시장에서 큰 고기 한 마리를 사서 배를 갈랐더니 천에 쓴 글이 있어서 읽어보니 자기에 관한 것이었다. 그 길로 학생은 명주 처녀의 집을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 천을 보였더니 부모가 기이하게 여기고 이것이야말로 천생연분이라 하며 결혼을 시켰다. 이 학생은 무월랑이라 하고, 처녀는 연화부인이라고 전해 온다.
한편 혜공왕의 원비(元妃) 신보왕후(新寶王后)의 아버지인 유성(維誠)과 동일인으로 보기도 한다.
[상훈과 추모]
무월랑은 죽은 후에 대명주군왕(大溟州郡王)으로, 연화부인은 명주연화부인(溟州蓮花夫人)으로 추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