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7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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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陵普賢寺朗圓大師塔 |
영어음역 | Bohyeonsa Nangwondaesa Ojintap |
영어의미역 | Memorial Monument for Great Priest Nangwon of Bohyeonsa Temple |
이칭/별칭 | 보현사 낭원대사 오진탑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흥삼 |
[정의]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고려 초기 개청(開淸)의 부도.
[명칭유래]
개청[834~930]은 고려 태조 13년에 보현사(普賢寺)에서 입적(入寂)하였다. 태조는 그에게 낭원대사(朗圓大師)라는 시호(諡號)를 내리고 탑의 이름을 오진지탑(悟眞之塔)이라 하였다.
[건립경위]
개청은 96세를 일기(一期)로 930년 9월 24일에 죽었다. 제자들이 같은 달 28일에 색신(色身)을 받들어 보현사에서 300보쯤 떨어진 서봉(西峰) 석실(石室)에 임시로 장사를 지냈다. 신경(神鏡)·총정(聰靜) 등의 문도와 여러 사람들이 개청의 가르침을 사모하여 여러 번 표(表)를 올려 탑을 만들 수 있도록 조정에 아뢰었다. 이후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뒤에 탑을 세우도록 허락하였다.
[위치]
강릉시 성산면 보현길 396[보광리 산 544번지]에 위치한다. 이전에 무너져 있던 것을 사찰 입구에 복원해 두었다가 1991년 사찰 뒤편의 산 중턱인 원래의 자리로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형태]
지대석부터 상륜부 보개석에 이르기까지 팔각평면을 기본으로 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의 부도이다. 2매의 판석(板石)으로 구성한 높직한 팔각지대석 위에 역시 팔각하대석을 얹어 놓았다. 하대석은 각 측면에 얕은 장방형액(長方形額)을 새겨 그 안에 큼직한 안상(眼象)을 1구씩 장식하였다. 중대석은 없어지고 상대석이 바로 하대석 위에 놓였으며, 앙련(仰蓮)을 양각하였다.
탑신석은 8각으로 각 면에 우주(隅柱)가 새겨진 단순한 형식이며, 정면에 문과 자물쇠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옥개석]은 두꺼운 편이며 낙수면은 경사가 급하고, 마루 끝에 귀꽃이 장식되었던 것 같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지붕돌의 하면에는 괴임이 있고, 추녀 밑은 각 모서리에 이르러 상향(上向)하면서 반전(返轉)이 뚜렷하다.
상륜부에는 지붕 정상에 편구형(扁球形) 복발(覆鉢)이 있고, 그 위에 지붕돌과 같은 모습의 좀 작은 보개석을 올렸다. 그 위에 현재 보주(寶珠)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일제 때 찍은 사진에 의하면 화염(火焰)에 쌓인 보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파괴된 채 오래 방치되어 일부가 없어진 것을 수습하여 다시 세웠으나, 중대석과 상륜부의 일부분을 상실하여 원형을 정확히 알 수 없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9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