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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014
한자 石橋里城址
영어음역 Seokgyo-ri Seongji
영어의미역 Seokgyori Fortress Site
이칭/별칭 토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석교토성길 17-7[석교리 474-2번지]지도보기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김흥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성곽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고려시대
지정면적 약 28,731㎡
소재지 주소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석교토성길 17-7[석교리 474-2번지]
소유자 사유[백성갑 외 7인]

[정의]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석교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토성.

[명칭유래]

석교리 성지석교리라는 명칭은 사천천에 있었던 석교(石橋)에서 유래한다.

[위치]

석교리사천면 북단에 위치하며 석교리 성지석교리의 제일 서쪽 부분에 해당된다. 최근 지표조사를 통하여 석교리윗구라미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석기(石器)와 집자리 단면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석교리 지역의 북서부는 해발 100m 내외의 산지이고 남동부는 사천천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선사유적의 확인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변천]

1970년대 후반 농지 정리로 훼손되었고 석재(石材)의 일부는 사천중학교 근처에 옮겨져 있다.

[형태]

석교리 성은 토성으로 석교리 서쪽 노동하리와 경계를 이룬 해발 50m 내외의 야산에 축조되었으며 자연부락명도 ‘토성’이라 불린다. 토성의 전체 길이는 약 0.4㎞ 정도이고, 성벽의 폭은 상부가 약 2~5m, 하부가 약 7~10m, 높이 약 2~3m이다. 성의 남문지 40m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토성벽 위로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석교리 성에 대하여는 근간의 자료에 단편적인 기록이 있을 뿐인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릉의 북 약2리반 석교리 서방 산록에 있는 토루(土壘)로서 주위(周圍) 약 3백간(間)으로 대부분 붕괴되었고, 성내(城內)의 대부분은 경지로 되었으며, 일반에 고려시대의 만호첨사청지(萬戶僉使廳址)라 칭한다.

위 기록은 석교리 성의 위치, 규모 그리고 현재 성곽의 현상과 고려시대 만호첨사청지라고 하여 축성 시기를 추정케 해준다. 이 기록을 통해 석교리 성은 규모가 작은 토성이며 대체로 고려시대에 축조된 지역토호 또는 만호첨사청지로 추정할 수 있다. 『전국유적목록』에는 ‘사천면 석교리, 사유, 석교리 서방 산록에 있는 토루’라 하였으며,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는 ‘원형의 성으로 둘레 800m, 높이 2.5m, 상부폭 1.2m, 하부폭 4.5m의 평지 토성으로 남문(정문)에서 진입로를 따라 좌우가 주변 농토(田)가 되고, 북문 가까운 곳과 북동부에 민가 6동이 있으며 동문은 없으며 서문이 있다’고 하였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성곽의 동남쪽으로 경작지가 되어 열려 있는 부분이 남문지이며 북문지가 확인된다. 성내부의 1/4 정도의 북서부는 1.5m 가량 한단 높은 지대의 경작지이고 북쪽 중앙부에 위치한 석교리 475번지 민가의 마당가 축대에 남문지의 나무기둥을 고정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기초석의 일부가 깨어진 채 쌓여 있다.

[현황]

현재 성곽 시설물은 모두 없어지고 토성 축조에 쓰였을 막돌과 성문 조임돌(門) 1개 및 기와조각이 산재한다. 성내의 민가는 동북쪽에서 남서향으로 4호, 북·남쪽에 마주보고 2호가 있다.

[의의와 평가]

강릉 지역의 17개소의 성곽들은 크게 산성, 평지성, 해안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석교리 성은 평지성에 해당된다. 고려시대의 지역 토호의 성으로 토호의 대저택을 보호하는 성격이었다. 이와 유사한 성곽으로 강동면장안성, 구정면왕현성 등이 있으며 이 보다 규모가 더 큰 것으로 우계성방내리성을 들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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