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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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船橋莊秋收記 |
영어의미역 | A Record of the Harvest by Seongyoj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도식 |
성격 | 추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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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이내번(李乃蕃) |
저술연도/일시 | 1820년[추정] |
필사연도/일시 | 1820년[추정] |
책수 | 2책 |
소장처 | 강릉 선교장(江陵 船橋莊) |
소장처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운정동 431번지] |
[정의]
선교장 이씨 가문에서 농지를 경영할 때 작성한 일종의 경영문기.
[개설]
선교장의 이씨 가문이 소유한 땅은 영동지방은 물론 강원 영서 일대에 걸쳐 있어 ‘만석꾼’이란 칭호를 듣기에 충분하였다. 추수기에는 강릉 일대를 중심으로 하여 북쪽의 주문진 일대, 남쪽의 묵호·삼척, 영서의 대화(大和)와 하진부에서의 농지경영이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충청북도 충주 음죽(陰竹) 등지에 농지가 산재해 있다. 지역을 남북으로 나누어 주문진 북쪽에서 생산되는 수확은 북촌(北村)에 저장했고, 강릉 남쪽에서 생산되는 수확은 남촌(南村)에 저장했다. 그리고 정동(丁洞)을 중심으로 한 강릉 일대에서 생산되는 수확은 본가에서 수납 저장했다.
[서지적 상황]
『선교장의 추수기』는 「(大宅)」과 「쇼(小宅)」 2책으로 되어 있다.
[편찬/필사경위]
『선교장의 추수기』가 언제부터 작성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大宅)」에는 “元福 秋收記 庚辰爲始 원복 츄수긔 경진위시라”라 기록되어 있고, 「쇼(小宅)」에는 “釗老味 秋收記 庚辰爲始 소놈이 츄슈긔 경진위시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경진(庚辰)은 이내번(李乃蕃)의 활동시기를 고려할 때 1820년(순조 20) 으로 추정된다. 소유한 농지 경영 관리를 위해 기록하였다.
[구성]
『선교장의 추수기』에는 매년 지주가 소작인에게 대여한 대여지에 대해 소작인별로 나누어 전답의 소재지, 자호(字號) 및 면적을 결부(結負) 또는 마지기[두락(斗落)]를 단위로 하여 표기되어 있다. 또한 각각의 수확량 및 영농자금, 추수비용 그리고 지주실수액(地主實收額)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내용]
대택과 소택에서 관리하는 농지가 나뉘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택과 소택에는 관리인이 정해지고 그 관리 하에 있는 농지에 관하여 소작인의 성명과 전답의 지번, 지목, 지대(支待) 등을 기입하였다.
선교장의 관리농지 총면적은 41결(結) 56부(負) 8속(束)인데, 이 가운데 논이 36결 39부 2속이고, 밭이 5결 17부 6속이었다. 대택에서 관리하는 농지는 21결 38부 6속으로 그 중 논이 19결 11부 2속이며 밭이 2결 27부 4속이다. 소택에서 관리하는 농지는 20결 18부 2속으로 논이 17결 28부이며 밭이 2결 90부 4속이다. 염전은 대택이 2부락(釜落)이고 소택이 3부락이다. 논과 밭의 비율은 19:81로 논의 비중이 높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씨 가문의 소작인은 그 총수가 424명에 이르고 있는데, 소작인의 신분은 대부분 평민과 천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