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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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神福寺址 |
영어음역 | Sinboksaji |
영어의미역 | Sinboksaji Archeological Sit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403번지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지현병 |
성격 | 폐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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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시대 |
원건물 붕괴시기/연도 | 조선시대 |
소재지 주소 |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403번지 |
[정의]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에 위치하고 있는 신복사 터.
[원건물 건립경위]
범일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 내려오나 명확하지는 않다.
[발굴조사 경위]
발굴조사는 총 2차례에 걸쳐 실시되었으며, 지난 1990년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과 2005년 강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하여 조사되었다.
1990년 6월부터 동년 8월까지 삼층석탑의 주변호보책 설치에 앞서 강릉대학교 박물관에서 시굴조사를 실시하여 건물지 2개소와 배수로 등을 확인하였다.
이후 2002년에는 영동 지역을 강타한 태풍 ‘루사’로 인해 많은 양의 토사가 유입되어 현상변경이 심하게 이루어졌고, 석불좌상의 동측 일부지역에서는 자연 배수로가 생기면서 지표가 유실되었다. 따라서 강릉시에서는 신복사지의 항구적인 복구를 계획하게 되었고, 이에 앞서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유구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학술적 자료를 수집하고, 정비하기 위한 발굴조사가 강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하여 실시되었다.
[위치]
강릉 신복사지는 행정구역상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403번지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이 지역은 강릉시내에서 내곡동의 관동대학교 방향으로 가다보면 강릉시 보건소에 못 미쳐 좌측으로 진입하는 작은 길이 나온다. 이 소로를 따라가다 보면 곡간 사이에 삼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이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일대가 신복사지이다.
[변천]
신복사지에 대한 조사는 어떠한 문헌기록도 찾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 정비가 한 번 있었다고 전하며, 1968년 8월에 강릉시에서 석탑 주변에 보호책을 설치하였으나 당시에 석탑 주변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조사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기록이나 사진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상태이다.
[형태]
조사결과 건물지 3기, 석축 1기, 구들시설 1기가 3층 석탑 주변으로 집중되어 확인되었다.
건물지1은 삼층석탑으로부터 남쪽 약 10m 지점에 위치하고, 신복사지의 금당지로 추정된다. 정면 5칸, 측면3칸의 구조이며, 초석 위에 초석을 쌓고, 적심과 적심 사이에 또 다른 초석이 확인되어 최소한 2번 이상의 증·개축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노출된 유구는 폐사 당시 마지막 건물지로 추정되고, 또한 건물지1을 ‘冂’의 형태로 둘러싸고 있는 담장지도 확인되며, 건물지1과 담장지 사이에 암거시설로 추정되는 석렬이 확인되었다.
건물지2는 삼층석탑으로부터 동쪽 약 15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며, 건물지1과 직각 방향으로 강릉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건물지2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건물지2의 담장지로 추정되는 석렬이 건물지2의 남쪽에서 확인되었다.
건물지3은 탑으로부터 서쪽 약 8m 지점에 건물지1과 직각 방향으로 건물지2의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구조이다. 건물지3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지로 추정되는 석렬이 일부 확인되었으며, 배수로로 추정되는 일부의 석렬도 확인되었다.
석축은 북동-남서 방향으로 한 축을 이루며 불규칙하게 쌓여 노출되었다. 건물지1의 담장지와 약 2m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축조되었으며, 석축의 일부는 자연석으로 열을 맞춘 것이 확인된다. 석축은 신복사지의 사역을 표시함과 더불어 산으로부터 내려오는 토사유입을 막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들 시설은 탑의 남동쪽 약 15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구들 시설은 화구부와 굴뚝시설, 3갈래로 뻗어나가는 고래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기와에서 ‘神福(신복)’, ‘神福寺(신복사)’라는 명문와가 출토되어 본 조사지역이 신복사임을 다시 한번 밝혀주었다.
[현황]
신복사지에는 현재 삼층석탑[보물 제87호]과 석조보살좌상[보물 제84호]이 위치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사 결과 신복사지의 가람배치는 탑을 중심으로 탑의 북쪽에 금당지가 위치하고 탑의 좌·우측에 회랑지가 위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가람배치는 삼층석탑 뒤에 금당지, 탑 양쪽에 회랑지가 있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형식이며, 또한 신복사지의 방향이 북서향을 하고 있어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신복사지의 가람배치나 출토유물로 보았을 때 신복사지는 고려시대의 사찰로 추정되며, 폐사는 조선시대 중기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