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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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國寺址 |
영어음역 | Anguksaji |
영어의미역 | Anguksaji Archeological Sit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774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홍영호 |
성격 | 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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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774 |
소유자 | 강릉시 |
[정의]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에 위치한 사지(寺址).
[명칭유래]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 「사찰조」에 ‘안곡사재성산면안곡동 년대미상 당우소실 단석탑고오척삼촌폭삼척 전면각불상석 비고이척 지장존석조잔류 금폐(安谷寺在城山面安谷洞 年代未詳 堂宇燒失 但石塔高五尺三寸幅三尺 全面刻佛像石 碑高二尺 地藏尊石造殘留 今廢)’라는 기록과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성산면 관음리사지(觀音里寺址), 강릉 서쪽 약 2리 구산리의 북 약 10정(町) 관음리 전중(田中)에 있다. 초석, 석원(石垣), 파손된 5층석탑 및 석좌불상이 있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안국사지(安國寺址)라 칭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위의 사료와 동일한 유물이 현재의 절터에 남아 있으며, 이곳의 자연 지명이 ‘안곡(安谷)’이므로 안곡사(安谷寺) 혹은 안국사(安國寺)로 볼 수 있다. 실제 관동대학교박물관이 1994년의 지표조사에서 ‘안국사(安國寺)’라고 적힌 명문기와편 1점을 수습하였다고 보고한 바 있는데, 기와의 문양은 어골문에 글자를 넣은 것으로 고려시대에 만든 것이다.
그러나 안국사라는 명칭이 조선시대에도 불렸는지는 의문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범우고(梵宇攷)』 등에는 안곡사[안국사]라는 절 이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곡사[안국사]가 위치한 관음리는 사찰과 관련된 지명인데, 이 관음리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범우고(梵宇攷)』 등에 수록된 위치를 알 수 없는 관음암과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에 성산면 관음리에 있다고 기록된 관음사(觀音寺) 때문에 생긴 지명인지는 알 수 없다. 즉, 예전에 관음(암)사라는 절이 있어서 발생한 지명인지, 혹은 안곡사가 관음신앙과 관련된 사찰인 까닭에 발생한 지명인지, 아니면 안곡사와 관음(암)사가 동일한 절인데, 시기를 두고 사찰명이 바뀐 것인지 등의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으나, 관음암(사)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어 판단하기 곤란하다. 현재로서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사찰조와 『강원도지(江原道誌)』사찰조에는 성산면 관음리에 관음사, 성산면 안곡동에 안곡사가 있다고 수록하였으므로 서로 별개의 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황]
현재 절터에는 5층 석탑과 석불의 대좌로 보이는 석물, 장대석, 축대 등이 남아 있다. 석탑은 이중 기단이며, 하층 기단은 안상이 각 면마다 3구씩 조식되어 있다. 상층 기단은 양 우주에 탱주 1주를 조출하였으며, 상대갑석은 갑석부연이 경사져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를 각각 1석씩으로 만들었으며 상륜부는 노반과 앙화가 남아 있다. 석탑의 조성 시기는 옥개석과 상대갑석부연의 형태로 보아 고려시대임을 알 수 있다. 석불의 대좌로 추정되는 석물에는 안상이 조식되어 있어 받침대로 이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밖에 석탑의 남쪽 아래에 있는 작은 암자의 앞마당에 부도탑의 하대석 또는 석등의 하대석으로 보이는 석물이 방치되어 있는데, 방형의 형태로 높이 41㎝, 폭 58㎝이며, 복련(伏蓮)이 조식되어 있다. 절터에는 많은 기와편이 흩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