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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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草堂洞遺蹟出土金海式土器 |
영어의미역 | Gimhae Style Earthenware Excavated at the Chodangdong Archaeological Site |
이칭/별칭 | 김해토기,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기명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이상수 |
성격 | 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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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일시 | 철기시대 |
재질 | 토제 |
문양 | 두드림무늬[승석문, 격자문] |
높이 | 24.5~45㎝ |
입지름 | 17.8~18.3㎝ |
소장처 |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 |
소장처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죽헌길 7[지변동 123] |
소유자 |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 |
[정의]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유적에서 출토된 타날문토기.
[개설]
김해식토기는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서 전한대(前漢代)에 걸진 타날문의 회도(灰陶)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강 유역, 낙동강 유역,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등 초기 철기시대 유적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어 남한 전역에서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로 한강 이남에 분포되어 있는 철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로, 적갈색 및 회청색의 경질 타날문토기를 의미한다.
김해식토기는 앞 시대의 민무늬토기와는 달리 입자가 고운 찰흙을 썼으며, 기본적으로 신라·가야 토기의 흙과 같다. 진흙 끈으로 감아올린 기법을 써서 성형한 다음 돌림판 위에 놓고 목과 아가리 부분만을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표면 장식에 슬립(slip)을 바른 흔적은 없고 손이나 대칼 또는 조개조각 따위로 문질러서 마무리하였다. 특히 조개 표면에 돌기선이 있는 고둥·고막·새조개 따위의 사용은 김해식토기의 큰 특징이며, 토기 안팎 표면에 빗질한 자국을 남기고 있다.
항아리의 경우 예외 없이 표면 전체가 도박(陶拍)에 의한 격자문(格子文)·승석문(繩蓆文)이 시문되어 있다. 기형으로는 납작바닥도 있으나 둥근바닥이 많으며, 토기의 종류로는 짧은목항아리(短頸壺), 작은단지, 시루, 굽다리접시, 쟁반형토기, 화분형토기, 쇠뿔모양(牛角形)의 손잡이가 붙은 토기 등이 있다. 소성은 저화도의 민무늬토기와는 달리 보통 900~1000℃의 고온으로 구웠으며, 굴가마[登窯]·방가마[室窯]와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환원염으로 만들어졌다.
[명칭유래]
김해 회현리 조개무지 유적에서 출토되어 ‘김해토기(金海土器)’ 또는 ‘김해식토기(金海式土器)‘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황]
강릉 초당동에서는 현 강릉고등학교 자리에서 1968년 강릉교육대학 신축 건물 터파기 공사 중에 김해식토기 3점이 출토되었다. 그 후 1981년 초당동 침례교회 앞의 모래언덕에서 하수구 공사 중에 또다시 1점이 출토되었다.
공사 중 토기를 수습했던 유석주에 의하면 지표하 150㎝ 깊이의 지층에서 출토되었는데, 토기가 출토된 주변에는 아무런 유구의 흔적이 없었고 2개의 토기만이 나란히 서있는 상태로 나왔다고 한다.